간호계뉴스
[간호사 파독 50주년]
"돈 벌러 독일 갔지만 가족 늘 그리워…편지 오는 날엔 모두 눈물바다"
일자리 찾던 나라에서 일자리 주는 나라로독일로 간 한국의 딸들 1974년, 여섯살 딸 남기고 가…우는 딸 달래느라 가슴 미어져남편이 보낸 사진 보며 또 눈물 고향 생각에 몰래 담근 김치…독일 사람들 "이상한 냄새 난다"새벽에 멀리 갖다 버리기도 독일어보다 송금 방법부터 배워…빵 살 돈만 남기고 고국에 보내한국 간호사들 현지서 인정…대학병원 등서 "와달라' 요청개인에겐 새로운 기회 안겨줘

1975년 2월, 독일 북서부 오스나브뤼크시에 있는 육군통합병원 간호사 기숙사. 한국인 간호사 다섯 명이 한 방에 모여 울고 있었다. 그토록 그리던 가족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간호사 중에는 1974년 1월 여섯 살 딸과 아홉 살 아들을 남겨두고 독일로 떠나온 노금희 씨(77)도 있었다. 노씨는 29일 기자와 만나 “파독을 앞두고 3개월간 교육받는 동안에도 ‘독일에 가야 하느냐’며 우는 딸 때문에 가슴이 미어졌다”며 “한 달에 한 번 기다리던 편지가 오는 날이면 한국인 간호사끼리 모여 같이 읽으며 울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한국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1만14명. 대부분 “돈을 벌 고 싶어 이역만리로 떠났다”고 했다. 늘 떠오르는 건 고향 풍경과 가족 얼굴이었다. 독일어보다 송금 방법을 먼저 배운 파독 간호사들은 빵 살 돈만 남기고 번 돈을 부모형제를 위해 고국으로 보냈다.
파독 간호사 민경임 씨(66·왼쪽)와 노금희 씨(77)가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근처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파독 간호사들은 당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컸다고 입을 모았다. 담담하게 회상하다가도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 10개월 된 딸을 두고 1966년 10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던 황보수자 씨(74)는 “독일에는 전화기가 많았지만 한국에는 마을에 한 대 있을까말까 해 편지 말고는 소식을 주고받을 방법이 없었다”며 “남편 편지와 함께 온 딸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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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을 앞둔 교육 기간에는 독일어보다 반공과 송금 교육이 우선이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 중이던 당시 대한민국은 외화에 목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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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더보기 > 한국경제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1299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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