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작 2009-06-30
  • 조회수: 3187 | 2009.06.30
길다면 긴, 하지만 너무 짧게만 느껴졌던 2주간의 wedding vacation이 끝났다. 한국에서 일했을 때 일년에 한 두번 휴가 5~6일씩 받아 필리핀과 태국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내가 일하던 병동엔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경력자들이 많았던지라 휴가철이 되면 싱글인 나는 어련히 알아서 일해야 하는 걸로 여겼고, 휴가철이 끝날 때쯤 나는 "이제 휴가 좀 받아볼까"하며 5~6일씩 휴가를 신청해 받곤 했다. 유럽과 미국이 한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그럴려면 적어도 휴가 8~9일은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긴 휴가를 받으려면 결혼을 하던지, 아니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동의서 비슷한 사인을 받아야 했다. 그게 병원 policy였다. 
 미국에서는 일한만큼 휴가일이 쌓인다. 일을 많이 하면 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날짜가 많이 쌓이게 되고, 나중에 한달 가까이 휴가를 신청해 받을 수 있다. 이걸 paid leave라고 하는데 시간당 쌓이는 credit은 병원마다 다르다고 한다. paid leave가 많이 쌓이고, 그걸 휴가로 대체해 쓰지 않으면 연말 즈음에 일정부분을 cash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병원과 계약시 이 paid leave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이 곳에선 휴가를 받기 위해 남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동의서를 받을 필요도 없다. 병동 schedule binder에 1년 휴가 계획표 비슷한 종이가 있는데 이를 체크해 적당한 때가 있으면 그때로 날을 잡아 "휴가요청서"를 unit manager에게 보내 사인만 받으면 된다. 너무 많은 간호사들이 어느 한 시기에 휴가를 신청해 받아버리면 병동일을 할 간호사가 갑자기 줄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병동엔 필리핀, 인도에서 오는 간호사들이 많은지라 대부분이 적어도 3~4주, 1달씩 휴가를 받아 필리핀에 다녀오곤 한다. 결혼을 하와이로 계획하면서 2주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1주 휴가를 신청했고, 앞으로 3개 off, 뒤로 4개 off 붙여 2주 휴가 받았는데 여행 다녀오니 3주 신청할 껄 그랬네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물론 일을 안 하는 동안에는 pay check을 못 받긴 하지만 일단 영주권 신청이 들어가고 병원일을 시작하기 시작하면 돈 걱정은 확 줄어버린다. 이 불경기에도 말이다.

 
 
휴가를 다녀와 첫 출근하는 날, 2주만에 가는 거니 분명 다른 층으로 floating 가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floating이였다.
"How you doing, Mindy?"
늘 반갑게 맞아주는 Christina가 shift leader였다.
"Mindy. 미안해. 오늘 너 step down unit 가야해. 너무 걱정마. 거기 Melinda(예전 우리 층에서 shift leader로 일했다가 최근 step down unit으로 간 RN)가 지금 shift leader라서 너 많이 도와줄꺼야."
늘 floating을 갈 때마다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터. 거기다 내가 가고 싶어하던 step down unit이였다. How exciting!!!!!!
step down unit을 가니 몇 안되는 간호사들이 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막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인지(내가 하와이 간 사이 open했다.) 환자는 모두 4명. 간호사 두 명이 환자들을 보고 있었고, 환자들 모두는 ER처럼 각각 personal monitors를 달고 있었다. 한눈에도 모두 중환들이였다.
이 병원에 있으면서 늘 느끼는 건데, ICU나 PICU, AICU, OR같은 특수파트엔 백인들이 정말 많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통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일반화의 오류겠지만도 개인적인 생각으론 병원 대부분의 간호사가 필리핀 간호사들이고, 이들 대부분이 힘든 부서 일을 꺼려하기 때문인데다 ICU는 특히나 protocol이며 따지는게 너무 많다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이 곳 step down unit도 죄다 백인 간호사들이였다. 늘 필리핀 간호사들과 인계를 주고 받다가 이 곳에 와서 인계를 받으니 발음도, 인계 속도도 다르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이 후르륵 쏟아지는데 긴장이 아주 바짝 되더라.
 
 
그 날 받은 두 환자는 그나마 네 명 중 easy하고 simple한 케이스. 내가 아직 ICU나 step down unit 경험이 없는데다 오리엔테이션도 못 받은 상태로 일하기 때문이였다. 한 명은 내가 일하던 surgical unit에 있던 여자환자였는데 수술 받은 후 tarchycardia가 마구 뜨면서 환자 confused 해지고 SOB가 생겨 step down unit으로 온 케이스였다. 다른 한 케이스는 ostomy bag을 갖고 있던 환자로 이번에 take down 수술을 받고 나서 perforation이 되어 ICU에 있다가 step down 으로 건너온 환자였다. 배에 아주 큰 수술자국이 있었는데 완전 open cut이였고 상처에서 나오는 pus가 VRE positive로 환자는 격리상태였다. 한 25cm 정도 되는 cut이였는데 중간에 작은 tube 비슷한 것 2개로 상처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고정해놓은 상태로 wound가 세 군데로 벌어져 있었고, 그 안으로 wet gause가 들어가 있었다. day 번 간호사 말하기론 내가 dressing change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상처를 열어보는 순간 "이거 내가 하는 거 맞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너무 깊었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packing gause는 pus와 blood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surgical unit에서 늘 clean cut만 봐온 탓이였다.
어쨌거 not sure하다면 shift leader에게 물어보는게 우선인지라 Melinda에게 물어봤다.
 "wound가 상당히 깊고 gause packing이 되어 있는데 이거 내가 하는 거 맞아? wet to dry dressing change라고 인계를 받긴 했는데, 내가 그냥 상처 위로 wet gause 대고 덮는 건지 아니면 packing 까지 모두 바꿔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Melinda 상처 보더니 왈..... "모두 바꿔야겠는데."
 "헉."
 
 
한국에선 dressing change가 모두 인턴이며 레지던트 몫이였다. 물론 가끔 dressing이 젖어버리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우리가 notify하고 dressing을 바꾸곤 했지만 대부분 인턴 call해서 dressing 교체를 부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선 모두 간호사의 몫이다. bed sore나 기타 상처, wound가 있으면 3일마다 사진을 찍어 따로 document를 해야 하고, dressing 종류도 상처 성격에 따라 간호사가 결정해 apply한다. wound 상태가 안 좋아지거나 너무 안 좋을 경우엔 따로 WOCN(wound-ostomy-continence nursing) RN에게 consult를 의뢰하기도 한다. 이 경우 따로 의사의 order가 필요없고, wound 상태에 따라 담당 간호사가 consult를 오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병원에 일하는 모든 간호사들은 일년에 한번씩 WOCN RN으로부터 wound 및 wound vac care 교육을 받는게 의무화 되어 있다.
 다시 환자 dressing 교체 이야기로 돌아와 환자에게 상태 설명하고 pain control 약 하나 주고는 gause를 바꾸기 시작했다. 늘 등 뒤에서 관찰만 하던 그런 deep wound를 직접 하나하나 만지고 닦고 하려니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dressing 바꾸고 나니 20분 가까이 후르륵 지나가버렸다. 그러는 중에 다른 환자 갑자기 frequent PVC's 떠서 환자 살펴보고.... 4시간쯤 지나 어느정도 정돈이 되면서 charting을 하고 있는데..... Melinda 살짜기 오더니 하는 말.
 "Mindy. CDC(감옥소 환자 간호사는 특수 unit)에 갑자기 신환이 몰려서 간호사가 필요하대. 너가 가야 할 것 같아."
 
  
긴장됐지만 그래도 너무도 흥미로웠던 step down unit에서의 일은 그 곳에 간지 5시간만에 종료되었고, CDC로 보내진 나는 ER에서 환자 두 명 받고 다른 간호사에게 또 환자 2명을 받아야 했다. 확실히 중환들을 보다가 CDC에서 좀 더 가벼운 환자군을 보니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경력이 많을 수록 이런저런 상황 대처에 더 노련해지는게 이런게 아닐까 싶다.
이른 아침 4시경..... 일이 많이 정리가 되어 여유가 생긴 틈을 타 step down unit에 가 Melinda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미 step down unit 매니저와 인터뷰 마치고 와도 좋다는 approval을 받았는데 지금 일하는 매니저와는 언제 얘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자 Melinda가 "아마 너 못 올지도 몰라."하며 말을 꺼낸다.
이미 모든 training을 마친데다 주변 경력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라 지금 있는 unit 매니저가 아마 안 보낼 꺼라는게 Melinda의 설명이였다. 그래도 내가 원하면 가는거지 뭐....안그래? I'm gonna try, though.... 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병동에 신규 간호사들이 많아지면서 요즘 shift leader들이 그네들을 모두 챙기느라 좀 바쁜 상황이다. 나는 이미 모든 training을 마치고 일한지 벌써 1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다보니 신규 간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련해 보일 뿐이고, 그래서 운 좋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게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경력을 위해서도, 경험을 위해서도 빨리 이 병동을 벗어나 step down unit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더 많이 알아야.... 더 잘 간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 마치고 나오는 아침.... 모두들 Congrat!!!을 외치며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사실 거의 비밀처럼 하고 몰래 휴가 받아 갔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터여서 어느 한 명이 "결혼식 어땠어?"하고 물어올 때마다 다들 "뭐? 너 결혼했어? 언제?" 하며 놀래했다. What a surprise~!!!!
휴우~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2주간 즐겁게 놀다가 다시금 밤일 시작하려니 몸이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보람(!) 있던 step down에서의 5시간이였다. floating이 이렇게 즐거웠던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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