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리닉에서 울리는 Happy birthday to you
  • 조회수: 3881 | 2015.03.06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아이들처럼 생일 파티를 할것도 아니고 해서 특별히 쉬려고도 하지 않아서 클리닉으로 출근을 했다.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는데 결과가 다 잘 나와서 70살이 다 되는 환자에게 “참 잘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칭찬을 해드렸더니 오늘이 자기 생일인데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는 환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어머나, 정말 그렇군요. 오늘 나도 내 생일이에요.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하고 호호 웃 으니 옆에서 닥터가 듣고 있다가 “오늘이 생일 이었어요?” 하고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닥터도 내게 “해피 버스데이 투유”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오후 환자 방문이 좀 뜸해진 한가한 틈을 타서 닥터 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검사 결과를 내가 체크하겠다고 진료실로 들고 들어갔다. 검사 결과를 체크하면 내가 체크했다고 일일이 싸인을 해야 하고 검사 결과가 비정상인 환자들은 따로 챙겨 놓으면서 한참 환자분들 검사 결과를 읽고 있는데, medical assistant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그녀들은 채혈을 하다가 잘 안되는 경우 내게 도와 달라고 하기에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가 보다 생각하고는 내가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물으며 얼른 일어났다.


그녀들이 도움을 청 할때는 환자들 혈관이 아주 찾기가 힘든 경우인데 고맙게도 그녀들이 못 할때는 나는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 위신을 세워 주었다.

그녀를 따라 나섰는데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면 진료실로 가야 하는데 진료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왜 이쪽으로 가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녀를 계속 따라가니 갑자기 직원들의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하는 합창이 시작되고 내 앞에는 여섯개의 촛불이 켜진 보기에도 예쁘고 먹음직스런 케잌이 놓여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어, 어 하고 말을 잇지 못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감동이 되었다. 직원들의 합창이 끝나자 선생님과 이름이 같아서 내가 처음부터 좋아한 직원 발레리가 “NP Kim, 어서 촛불을 꺼요.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말아요.”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갑자기 소원을 빌라니 생각이 잘 안났지만 “내 소원이 뭐였더라?” 하고 얼른 생각해 보니 한가지가 생각이 났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정말 잘 믿게 해주세요." 그리고 또 생각나는 다른 소원들을 빌었다. 


케익의 촛불을 호- 불어서 끄니 짝짝짝- 이어지는 박수소리, 나는 쑥스럽고 고마와서 땡큐, 땡큐, 모두들 고마와요. 하고 인사를 했다. 케익을 잘라서 첫 피스는 내가 먹고 어서 다른 사람들도 잘라 주라고 성화를 대어서 내 것을 챙겨 놓고 케익을 자르면서 이 깜짝 이벤트가 누구의 아이디어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말. “Who cares?”


내 생각에는 내 생일이라고 내가 환자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닥터밖에 없으니 아무래도 닥터의 아이디어 같았다. 그 전에 직원 중 한명이 아팠을때 얼마나 살뜰하고 정성스럽게 또 세심하게 챙기는지 터프가이 처럼 보이는 외모와는 다른 속내가 부드러운 남자인가 보다 하고 약간 놀랐는데 오늘의 이벤트도 약간 의외였다. 이 직원일 말고도 환자들이 경우가 없이 의사에게 우기고 힘들게 하여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을 여러번 보았는데 나는 그럴때마다 약간 속으로 놀라고는 하였다. “우리 시대 터프가이 처럼 생겨 가지고 마음이 이렇게 여리니 이 사람은 허당이야.. 허당.” 하고 나는 생각했다. 생일날이라고 해서 생일 케익을 선물 받고 “해피버스 데이 투유” 를 부르고 촛불을 끄는 것을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어른은 그런것 필요없다고 늘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생일이라고 특별 대접을 받으니 나는 감격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이런 걸 하나 봐……….

그 날은 오피스를 닫을 무렵 환자들이 10명이나 몰려와서 얼마나 바빴는 지 나도 이방 저방 들락대며 내가 볼 수 있는 환자들은 다 보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환자 손등에 난 혹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으면서 Cyst같다고 하자 cyst의 criteria를 내게 부지런히 설명해 주는 닥터가 고마왔다.

그날 퇴근후에 나는 닥터에게 생일 케익도 당신의 배려도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닥터는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한국식당에 가끔씩 가는데 김치가 너무 맛이 있단다. 그말을 듣고 집에서 콩나물을 무쳤는데 아주 맛있게 되어서 먹어 보라고 조금 갖다 주었더니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 후에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 부침개와 김밥을 만들었을 때도 조금 갖다주고 잡채를 했을때도 한 접시 배달을 했더니 싱글 벙글, 사람은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엄마가 항상 음식을 푸짐하게 만드셔서 이사람 저사람과 나누시는 것을 늘 보고 자라서인지 음식을 하면 언제나 우리 먹을것 보다 조금 더해서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 사람들에게 먹어봐요, 먹어봐요 하며 즐겁게 갖다준다. 내가 만든 음식을 받고 즐거워하는 닥터를 보니 생각나는 내 추억의 한켠에 아름답게 자리한 우리 엄마의 좋은 모습 하나…….


내가 여고생 이었던 어느 하루, 그날은 찌는 여름 날이었는 데 엄마와 햇빛에 얼굴이 잔뜩 그을린, 한 눈에도 행색이 남루한 낯선 아주머니가 상 두개를 들고 엄마와 함께 들어 오셨다.

엄마: 얘, 이 분 점심상 좀 차려와라 .
: ???? (누구신가?)

나는 내가 싫은 표정이라도 지으면 이 낯선 아주머니가 불편해 하실 것이라고 직감을 하고 보던 책을 덮고 얼른 일어나서 반찬이 될만 한 것은 다 꺼내서 얼른 상을 차려 아주머니 앞에 공손하게 갖다 드렸다. 

엄마: 어서 자셔요. 뙤악볕에 다니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점심 전이지요?

그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살짝 어리는 것을 보고 나는 얼른 일어났다.

아주머니: 따님이 착하군요. 군소리 없이 상을 차려 오는 것을 보니….. 

그 분은 점심을 달게 드신 후에 상값을 엄청 깎아주면서 엄마에게 상을 사라고 했다.

엄마: 내가 상 값을 깎으려고 들어 오시란 게 아니에요. 점심도 굶고 다니는 것 같아서 우리집에서 점심 좀 자시고 쉬었다 가시라고 들어 오시라 했어요. 점심도 자셨으니 좀 쉬었다나 가요.

나는 그제서야 엄마가 길에서 만난 이 상을 파는 행상 아주머니가 딱해 보이셔서 우리집에서 점심 대접을 하려고 모시고 온 것 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가끔씩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의 고운 마음씨가 따스한 온기처럼 내 몸에 흐르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시간을 투자해야 되는 일이니 만큼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큰 일이지만 그 사람들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내 가족이 먹으려고 만들때 조금 더 만드는 것이니까 별로 부담도 되지 않았다. 병원에 음식을 얼마나 많이 나르는지 한번은 우리 딸이 “엄마, 군대 먹이려는거야? 왜 그렇게 맨날 많이 가져가?”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묻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을 배려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에게 생각지도 않은 감동을 주는 것,  
상대방이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을 알 때 느끼는 한편 고맙고 한편 기쁜 경험을 누구나 가져 보았을 터.  
서로를 조금만 더 배려하면 힘든 임상 생활일지라도 모두가 편안하고 즐거운 근무 환경이 되지 않을까? 


NP  일기 독자 여러분께,
지난 12월 일기에 올해 5월쯤 한국을 방문 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5월에 꼭 미국에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다음에 뵙지요.




  English for healthcare professionals 에는  의학영어 회화뿐 아니라  ......카더라 통신이 아닌 미국에서 간호사 로 근무하는 저자가 쓴 미국 간호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책 구입을 원하면 click here 






 
ⓒ (주)너스케입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네이버블로그
로그인 후 댓글 읽기 및 등록이 가능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