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부인과 함께 오신 분인데 너무 어지럽고 기운이 없다며 진찰대에 길게 누워 계셨다.
이렇게 기운이 없고 어지러운지가 꽤 되었다고 하는데 혈압을 재어 보니 혈압이 상당히 낮아서 고혈압 약이 너무 세게 들어가나 보다라는 생각이 즉시 들었다. 고혈압 약을 무엇 무엇 드시느냐고, 혹시 아시느냐고 해보았자 쓸데없는 질문을 하였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내 경험으로 내가 이런 질문을 하였을때 10명 중 한명도 제대로 대답하는 환자를 보지 못해서 별로 기대를 안하게 되어서 해보았자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진즉부터 들었다. 혹시나 했던 환자의 대답은 “여러가지를 먹고 있다.”여서 내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되었기에 컴퓨터에서 챠트를 찾아서 맞춰 봐야겠다고 들여다 보고 있는데 부인께서 상큼한 제안을 하셨다. 환자가 단골로 가는 약국이 있는데 거기다 연락을 하면 알려 줄 것이라고 하셔서 사무원에게 전화를 해서 약 리스트를 팩스로 받아 놓으라고 하고, 나는 다른 환자에게 가서 테스트에 대한 교육을 하고 다시 왔다.
다행히 약국에서 약 리스트를 보내 주었는데 약 리스트가 세 페이지나 되었다.
'엄마야, 괜히 잘난 척하고 보내 달라고 했네. 이것 언제 일일이 다 확인하지? 후회 막급……….'
팩스로 도착한 종이를 들고 컴퓨터에 입력된 약과 비교해 보니 터무니 없이 틀렸다. 팩스로 온 종이에는 놀랍게도 약이 두세 가지 중복이 되어 있었다. 같은 고혈압 약인데 어떤 약은 generic name으로, 또 어떤 약은 brand name 으로 처방이 되어 있으니 일반인이 보면 두가지 다른 고혈압 약으로 착각하기 십상이고, 또 어떤 약은 환자가 먹기 쉽도록 두 가지를 합해서 하나로 만든 약이 많은데 그런 약은 환자는 한가지로 치치만, 의료인이 보면 두가지 약인 경우가 흔 했다. 약국에서 보내준 리스트와 입력되어 있는 약 리스트가 너무나 틀려서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약국에서 보내 준 리스트가 맞다면 약을 당장 줄이고 고쳐야 하는데 문제는 환자가 어떤 약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약 이름을 불러 주면서 이런 약 드시는 것 같으냐고 물으니 환자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전혀 모르겠다고 하였다.
하기야 고혈압 약은 일반인이 기억하기에는 이름이 많이 어려운 약이어서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 전, 의사에게 갔다가 목격한 장면 하나.
의사: 혈압이 굉장히 높으신데요. 약 안 드셨나요?
환자: 약 안먹은 지가 한 3-4일 됩니다.
의사: 왜 안드셨나요?
환자: 약을 잃어 버려서요.
의사 : 약을 잃어 버리시다니요? 어디다 두셨는데요 ?
환자: 글쎄 그게 어디다 두었는지 통 찾을 수가 없네요. 서너가지 되는데 하나도 못 찾겠어요.
의사: …………… (몹시 참담한 표정으로) 그래서 하나도 안 드셨나요? 그러시면 안됩니다. 다음에 혹시 또 잃어버리시면 얼른 오세요.
어떻게 늘 먹는 약을 잃어 버릴 수가 있을까 ? 나는 이렇게 답답한 환자도, 아니 어떻게 매일 드시는 약을 잃어 버리시나요? 하고 한마디를 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텐데 아무 말없이 좋은 말로 상대해 주는 의사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딱하게도 생각되었다. 그리고 외래에서 일하는 후배의 말이 생각났다.
"선배는 상상도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글쎄요, 내일 약속 있다고 오늘 오후에 전화해도 안와서 다시 전화하면 잊어 버렸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설마, 아무려면 그럴까? 자기 나한테 뻥이 좀 지나친 것 같애.
"내가 선배한테 왜 이런 일로 뻥을 치겠어요? 선배는 몰라. 선배는 몰라. 내가 팔짝 뛰겠어요."
사실 나는 그 약을 잃어 버렸다는 환자를 보고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았는데 NP가 된 지금은 그런게 하나도 우습지 않고 환자가 잘못 알아 듣는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내가 자진해서 "지금 말씀드린 것 써 드릴까요?" 하고 상냥하게 물은 후 메모지에 또박또박 대문짝만 하게 써주는 게 버릇이 되었고 이런 일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내가 생각해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여러번 하였다.
하여튼 내 환자의 경우에는 약병을 모두 가져 오라고 하여서 맞춰 보는 방법 밖에는 없는데 안가져 왔으니 어쩌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의사에게 이차 저차 상황 설명을 하였다. 의사도 대뜸 이런 경우에는 약병을 다 가지고 오셔야 되는데 오늘은 그냥 가시고 당장 내일이라도 약병을 다 가지고 꼭 다시 오시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한 환자는 테스트 전에 혈압약을 조절해야 한다고 해서 고혈압 약으로 어떤게 들어가나 보려고 약 리스트를 보고 있는 데 다른 약은 다 알겠는데 한가지 약이 발음 조차도 어려운 그야말로 처음 듣는 약이었다. '이 약이 고혈압 약인가? 아닌것 같은데..' 그래도 확인을 하고 싶어서 구글을 하니 놀랍게도 그 약은 내가 들어 보지도 못한 계통에 속하는 혈압약이었다. 나는 그 약까지 포함 시켜서 의사에게 이렇게 3가지가 들어가고 있는데 다른 약을 첨가할지 아니면 지금 먹는 약을 양을 늘릴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의사에게 물었다. 환자가 심장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나 혼자 약을 조절 하기는 약간의 부담이 느껴지기도 했다. 의사는 내가 적어온 약을 보더니 문제의 그 내가 처음 들어보는 약을 찍어서 가르키며, 이 약이 무슨 고혈압 약인가 약간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아하, 의사도 이 약을 모르시는 군요. 나는 알 지------이요.메롱.' 하고 장난기가 발동 하였다. 그렇지만 나도 금방 찾아보고 알고 왔으면서 그 전 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잘난 척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잘 모르면 잘난 척 안하고 잘 가르쳐 주는 의사의 얼굴 을 세워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약 생전 처음 들었어요. 지금 찾아보고 왔습니다. 고혈압 약이에요." 했더니 의사도 그 자리에서 구글을 하였고 내 말이 맞으니까 아무 말도 안하고 다른 약을 하나 추가하였다. 나는 귀찮아 하지 않고 모르는 약을 찾아보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작은 일이지만 내가 모르면 대충하지 않고 꼭 확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되었으니 부족 하여도 환자를 잘 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나의 본심이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English for healthcare professionals 에는 의학영어 회화뿐 아니라 ......카더라 통신이 아닌 미국에서 간호사 로 근무하는 저자가 쓴 미국 간호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책 구입을 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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