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쁜 그녀가 원하는 검사
  • 조회수: 3634 | 2014.09.05

하얀 니트가 썩 잘 어울리는 그녀는 예쁘고 젊은 그리고 키도 큰 흑인 환자였다. Atrial fibrillation 때문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beta blocker 를 새로 먹기 시작했고 cardiologist 에게 가라고 해서 갔다가 닥터 P에게 온 환자였는데, 닥터가 새로온 사무원들 때문에 하도 바빠서 내가 보기로 했다. 응급실에서 새로 약을 하나 처방해 주어서 그 약을 계속 먹으라고 했다면서 처방를 써 달라고 하는데 처방량이 내가 보기에 아무래도 너무 센 것 같았다. 닥터에게 처음으로 시작하는 약인데 이 약 용량을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맞다고 줄이라고 했다. Blood test도 여러개 오더를 내고 처방도 새로 써 주어서 다 끝난 것 같은데 환자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환자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서 무슨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냐고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물으니 그녀는 대답을 못하고 머뭇머뭇하였다.
"괜찮으니까 말씀해 보세요."  부드럽게 다시 한번 재촉을 하였더니 예쁜 그녀에게서 뜻밖의 질문이 나왔다.
"저어, 에이즈 테스트를 해주실 수 있나요?" 어머나, 속으로는 회들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 나를 대견스럽게 여기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테스트는 환자분들 허락이 없이는 못하니까 테스트를 해도 좋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세요. 제가 동의서를 가져 오겠습니다."
 

얼마전 갑자기 다리가 많이 아파서 좀 약을 먹고 기다리면 좋아지기를 기다리다 아픈 것을 조금도 못참는 엄살꾸러기인 나는 할 수 없이 우리 병원 응급실에 갔다. 언제나 환자들로 넘쳐나는 우리병원은 병원 직원이라고 삘리 봐 주지도 않았다. 두 시간을 기다려 간호사를 먼저 만났는 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질문이 나왔다.
"에이즈 테스트를 받아 보시겠어요?"
"나 말인가요?"
"예쓰"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하하 웃고, "나는 그런 걱정 안해도 되는 사람인데요. 안 받아요." 간호사는 약간 정색을 하면서 "그냥  물어 봤어요." 하고 급하게 가버렸다. 나는 속으로 "이상하다. 왜 저런 질문을 할까? 응급실에 가끔씩 왔어도 한 번도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법이 바뀌었나 보다." 하고 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 일주일 동안  의학 전반에 걸친 주제로 하는 집중코스에 다녀왔는데 이 코스에서 '에이즈'에 대한 update도 주제로 나왔다.  

거기서 내 궁굼증이 풀렸는데 의료법상 응급실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에게 에이즈 테스트를 받아 보겠느냐는 질문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있다고 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그 때의 일을 떠 올리며 사무원에게 에이즈 테스트 동의서를 하나 달라고 나는 소근거리며 말했는데 그녀는 큰 목소리로 "에이즈 테스트 동의서요?" 하고 말하는 것이 몹시 거슬렸다. 아무리 닥터 오피스에서 전화받고 사무일만 보는 사람이지만, '어려서 이렇게 철이없나? 환자 불편 하게  왜  떠 들어?' 나는 나중에 주의를 주리라 마음 먹었다. 결과는 대개 일주일이면 나오지만 넉넉하게 2주 있다 오시라고 하였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왔는데 나도 염려가 되어서 그녀 이름을 얼른 찾아서 결과를 보니 다행히도 음성으로 나왔다.

그녀가 약속을 하고 온 날, 다른 환자를 부르면서 그녀를 보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여서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먼저 들어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그녀의 순서를 기다렸다. 의사는 내게 오피스 내의  평화를 위해서  환자 순서를 잘 지켜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여러번 하였지만 몹시 불안할 그 녀 를  생각하니  그녀를 얼른 불러 들이고 싶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그녀 앞의 환자가 그날따라 이것저것 물으면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여서 할 수 없이 여기까지 오셨는데 의사에게도 얘기하고 의사 얼굴도 한번 보고 가시라고 꼬드겨서 얼른 내 보냈다.

드디어 그녀의 차례.   
온 몸으로 긴장하고 있는 그녀는 걸음걸이 조차 조심스러웠고, 나는 그녀를 위해서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멧세지로 문을 꼭 닫았다.
그날도 그녀는 흰색 스웨터를 입고 왔다. 흰색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녀에게 나는 한마디 하였다. "사실은요, 저도 흰색 좋아해요. 그런데 저는 조금 넓은 데다 또 짧아서 입기가 조심스럽지요." 하고 호호호 웃었더니 그녀도 따라 웃으면서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결과가 얼마나 궁굼할까? 그녀의 입장를 헤아린 나는 "지난 번에 하신 special blood test 가 제일 궁금하시지요?" 나는 에이즈라는 말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음성이에요. 여기 결과 보세요." 하고 그녀 앞에 검사 결과를 보여주었더니 그녀는 너무나 좋아하였다.


그녀는 검사 결과 카피를 원했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고 묻는 것은 그녀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이고 예의도 아니니까 나는 두말없이 카피를 해주면서 healthcare provider (MD, NP, PA를 지칭하는 말)로서 그냥 한 마디 해 주었다. 
"앞으로는 꼭 조심 하셔야 합니다." 나의 그 한마디가 무슨 의미인지 성인인 그녀는 잘 이해하겠지 싶어서 나는 딱 한마디만 해주었다.
다음 약속이 언제니까 잊지말고 다시 오셔야 한다고 일러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들어올 때의 조심스러운 걸음 걸이와는 달리 그야말로 나는듯한 걸음 걸이로 급하게 오피스를 나갔다. 사실 양성으로 판정 됐을 경우, 그 결과를 내가 알려주면서 환자 반응에 대한 뒷감당이 아직 자신이 없어서 '닥터한테 얘기하라고 해야지.' 하고 내 나름대로 작전(?)계획을 수립했었는데 '아, 잘됐다.'하며, 나는 그날 가벼운 마음으로 오피스를 나섰다.
'나는 NP니까 힘들고 어렵고 곤란한 일은 의사에게……… 호호호.'
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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