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새 환자
  • 조회수: 3882 | 2014.10.02
새 환자가 왔는데 들여보내도 되느냐고 묻는 사무원에게 그러라고 하였다. 새 환자는 여러가지로 할 게 많고 또 진료 기록도 쓸게 많아서 좀 부담이 되지만 그렇다고 늘 닥터에게만 미루면 안될 것 같아서 오늘은 내가 보기로 하였다. 그 날은 내가 근무하는 날이 아니었는데 닥터가 꼭 오라고 하여서 갔더니 환자도 많이 가다리고 있었지만, 닥터는 그날따라 트래픽이 심해서 많이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왜 내가 오는 날은 닥터가 꼭 더 늦게 오는 일이 생기는지..... 

피부염이 있어서 온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을 하나 써주면서 5일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하였다. 새 환자는 불편하게 걸으면서 지팡이를 짚고 왔는데 무대의상 처럼 번쩍거리는 옷을 입은데다 약간 이상한 뉘앙스가 풍기는 외모였다. '이 환자는 왜 이렇게 옷을 이상하게 입고 왔을까?' 어떻게 오셨냐고 말문을 떼면서 주소를 확인하니 이곳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나 걸리는 데 였다. 

'닥터 P가 천하의 명의라고 명성이 자자한 분도 아니고 이상하네.' 나는 속으로 생각 하였다.
나: "먼데서 오셨군요?"
환자: "최근에 이사를 했습니다." 
나: "그러세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의사를 바꾸시나요?" 
환자:  "..."
나: "무슨 만성병이 있으신가요?"
환자: "당뇨와 고혈압이 있습니다."
나: "드시는 약은 가지고 오셨나요? 가지고 오셨으면 보여주세요."
환자는 무려 다섯가지나 되는 혈압약을 늘어 놓더니 또 하나의 약병을 내놓는데 약병 가득히 들어 있는 고혈압 약들과는 달리 이 약병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약 처방이 당장 필요해서 그 처방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약병을 읽어 보니 절대로 처방을 함부로 해줄수 없는 약 "CONTROLLED SUBSTANCE" 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이 약 처방을 써달라고 오신 모양인데 잘못 짚으셨네요.' 하고 중얼거리고는 환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 "이 약은 함부로 처방전을 써드릴 수 없는것 아시죠? 처음 보는 환자 분께 이런 약 처방전은 못 써 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약은 이렇게 다 많이 남아있는데 왜 이 약병만 비었나요? 혈압약은 항상 드셔야 하지만 이 약은 진통제니까 많이 아플때만 드시면 되니까 많이 남아 있어야 하거든요. 오랫동안 드신것 같은데 언제부터 드셨나요?"
환자: "FDR(뉴욕시 고속도로 이름)에서 크게 사고가 나서 다리가 많이 아파서 계속 먹고 있습니다."
나: "그게 언제였나요?"
환자: "FDR에서 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그래서 무릎도 아프고 다리도 아주 많이 아파요."
나: "그 말씀은 하셨어요. 언제부터 이 약을 드셨냐고요?"

환자는 같은 말만 서너번 되풀이 하다가 내가 여러번 더 물은 후에 작년 1월부터 먹고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자꾸 따지듯이 묻는게 맘에 안들었는지 생뚱맞게 내 영어가 너무 빨라서 못알아 듣겠다고 신경질을 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내가 자기 영어가 빠르다고 하면 몰라도 처방을 안써준다고 하니까 화가 나시는 구만. 당신 이 마약을 쇼핑 하러 온 것을 내가 알지요. 절대 못 써줍니다.'

환자: "그 처방이 꼭 당장 필요해요. 써주세요."
나: "저는 써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약은 언제 끝났어요? 왜 처음에 이 약을 써준 의사에게 가시지 그러세요?"
환자: "그 약병에 다 있잖아요. 거기 읽어보세요."
나: "이 약을 처방해 준 의사에게 못가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의사한테 가세요."
환자: "의사가 면허에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못 써준대요."
나: "아, 그랬나요? 당뇨도 앓으신다면서 어째 당뇨약은 하나도 없나요?"

환자는 계속 횡설수설 사설을 늘어 놓는데 내가 묻는 말에는 제대로 대답하는 게 거의 없었다. 이 의사 저 의사에게 다니며 마약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임을 단번에 알아차린 나는 최근에 의료 법이 바뀌어서 마약 처방을 써주기가 아주 어렵다고 설명을 하고 일단 혈압을 재었더니 환자의 혈압은190/ 130. 이 다섯가지 약을 다 제대로 먹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한참 횡설수설한 다음에 나온 대답이 금방 먹었기 때문에 약효가 없다는 둥, 혈당이 떨어져서 어지럽기 시작하는 데 처방을 얼른 달라는 둥. 환자는 줄줄이 기다리고 의사는 도착을 안하고 나도 속으로 짜증이 나기시작했다. 나는 그 약 처방은 절대로 써줄수 없다고 단호하게 자르고 의사가 올때가지 기다리고 싶으면 기다리던지 싫으면 가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더니 의사도 나와 비슷하면 자기는 여기 다시 오지 않겠다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하면서 언성을 높이고 마구 화를 냈다.

그것은 나중에 의사를 만나면 알아서 하시라고 나가서 기다리시라고 하고 환자를 내보냈는데 '아니 내가 이런 마약 중독자까지 이렇게 실랑이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자꾸 화가 났다. 좀 있다 도착한 의사에게 마약을 쇼핑하러 온 환자라고 살짝 귀뜸을 해주었더니 알았다고 하였다. 의사가 그 환자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내 오피스에서 환자를 보느라 바빠서 그 이상한 새 환자가 어떻게 됐나 궁금해 할새도 없었다.
나중에 의사에게 물었더니 호호호 웃으면서 "그 처방을 써주었다가는 내 면허도 함께 날아갈 텐데요. 면허가 없어서 못 써주니까 통증 전문의에게 가라고 했어요." 나는 환자가 의사 말을 그대로 믿고 가버린 것을 보니 좀 어리석은 사람 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의사가 면허에 문제가 있는데 프랙티스를 할까? 환자는 갔지만 나는 그 환자 가 내게 무례하게 한 것이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께 "글쎄 있잖아요. 오늘 여차저차해서 환자가 내게 마약 처방 써달라고 막 언성늘 높이고 무례하게 굴었어요. 너무 화나는 것 있죠." 하고 보고를 겸한 하소연을 하고나니 속이 좀 시원 하였다.

선생님은 마약 처방을 써달라고 이 의사 저 의사 찾아 다니는 중독성 환자가 많으니까 그런 일로 너무 신경쓰지 말고 그렇기 때문에 의료법상 그런 처방을 써줄때는 반드시 컴퓨터에 들어가서 최근에 다른 의사에게 처방 받은 적이 없는가를 꼭 확인한 후에 써주어야 한다고 선생님 다운 충고를 다시 한번하셨다. '선생님은 못 말려.. 그렇지, 내가 화가나는게 뭐가 중요해. 의료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그게 훨씬 더 큰 문제를 일으킬 텐데...' 나는 처음 만난 이상 한 환자가 맘에 안 들어서 잽싸게 수선을 피우고 열을 내면서 중대사안처럼 보고를 드렸는데 선생님의 지극히 선생님다운 차분한 반응에 약간 쑥스러워졌다. 내가 어디가 좀 아프다고 하면 고맙게도 내가 달라고 하지 않아도 의사들이 마약성 진통제를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generous하게 주고는 하는데 나는 그 약을 받아가는 기록이 없어 문제될 소지가 없으니 안심하고 많이 주는 모양이리라. 

'마약과 전쟁을 하는 나라. 마약에 찌든 사람이 많아서 정부에서 새로 법을 개정하여서 괜히 우리같은 사람 일만 한가지 늘었잖아?' 나는 속으로 혼자 툴툴 거렸다.
에구, 환자만 보기도 바쁘고 벅찬 내가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네...
웬 지켜야 할 법이 이리도 많은지...
정신을 바짝 차리자. 경숙아.



 
ⓒ (주)너스케입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네이버블로그
로그인 후 댓글 읽기 및 등록이 가능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