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계뉴스

  • “최고의 간호는 사랑이에요”
  • 2015.11.16
만남 김수지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
“최고의 간호는 사랑이에요”
 

수지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

간호학계 노벨상받은 간호박사 1호

50년간 생명 보듬는 ‘사람 돌봄’ 실천

퇴임 후엔 아프리카 말라위서 봉사

“나누고 더불어 살아야 성공한 삶”

 

▲ 김수지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13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수지(73·사진)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수상 소감 첫 마디를 하는 순간부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간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간호대상까지 받은 간호학계 대표 인물이 상을 받으며 보이는 눈물이 조금은 의아했다. 수상 소감의 시작도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만인의 친구임을 표방하는 YWCA가 선정하고 씨티은행이 후원한….” 하지만 문장 속 ‘친구’라는 단어는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였던 것이다. “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마자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었어요. 우리 친구들, 아프리카 말라위 제자들, 간호사인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프리카 소녀들이 생각나서요.” 환자도, 제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도 그에게는 모두 ‘친구’였다.

 

김 이사장은 수상 소감에서 “많은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살도록 간호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 간호사라면 꼭 거치는 ‘나이팅게일 선서’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말라위’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

 

대한민국 간호학 박사 1호인 김 이사장은 이화여대 간호대 학장, 서울사이버대학교 총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06년에는 이화여대 간호학과 교수를 하면서 밤에는 서울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졸업 후 바로 총장이 되는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2007년에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記章)’을 수상해 ‘한국의 나이팅게일’로도 불린다. 그렇게 50년을 간호사로 살아온 그는 70대에 혈혈단신 아프리카 최빈국인 말라위로 건너갔다. 대양간호대학에서 말라위의 나이팅게일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2010년 12월 고 이태석 신부님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보게 됐어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봉사에 매진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신부님의 삶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죠. 그쯤 20년 넘게 말라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해온 백영심 간호사가 찾아와 새로 문을 연 대양간호대학의 학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자신이 암에 걸렸다면서요. 잠시 고민했지만 결정하고는 바로 비행기에 올랐죠.”

 

비행기로 이틀 꼬박 걸려 도착한 말라위는 한마디로 열악했다. 흙으로 만든 움막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열악한 환경 탓에 전염병과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환자도 속출했다. 하루에 160여 명의 임산부가 산후 처치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국민의 평균수명이 39세에 불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배움의 열의만은 뜨거웠다. 30명을 선발하는데 무려 1400명이 몰려왔다. 47 대 1의 경쟁률이었다. 하지만 30명과의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빨리빨리’를 외치다가 갈등을 겪기도 하고, 곱셈도 못 하는 학교 회계 담당 직원과 부딪치기도 했어요. 과제를 내도 할줄 몰라 못하는 학생들이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제 방식만 고집해서였다는 걸 깨닫고는 바꿔나갔어요. 틈만 나면 노래와 춤을 즐기고 자유로운 그들의 방식에 맞춰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말라위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생들의 인식 변화가 가장 큰 기쁨

3년제로 설립됐던 간호대학은 4년제 과정(BSc in Nursing&Midwifery)으로 승격됐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병원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간호 활동을 할 수 있다. 수많은 학생의 꿈인 고향으로 돌아가 보건소를 짓고 의료활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첫 입학생 서른 명 가운데 스물여섯 명의 꿈이 ‘부족 마을로 돌아가 보건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말라위에서는 3년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지역사회에서 간호와 조산 활동을 하려면 다시 1년 반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이 과정을 통합한 교과과정을 개발해 4년제 학사 프로그램으로 승격하게 된 거죠.”

 

대양간호대학은 지난 4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겹경사를 맞았다. 간호대학을 비롯해 정보통신대학, 의과대학, 농과대학 등 단과 대학이 설립됐다. 월급도 없는 봉사직이지만 그가 4년간 간호사 양성과 학교 운영에 온 힘을 다한 성과였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일은 학생들의 인식 변화였다.

 

“지난해 1기 졸업생들이 처음 간호사 면허시험을 봤어요. 그런데 시험 결과가 4개월 정도 뒤에 발표되다보니 긴 공백이 생기거든요. 그때 학생들이 시험 결과가 날 때까지 4개월간 무보수로 전국 6개 지역병원에서 학생 인턴으로 봉사하겠다고 제안을 한 거예요. 학생들은 경험을 쌓을 수 있고 간호인력이 모자라는 말라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였죠. 이제는 다른 간호대학에서도 학생 인턴제도를 도입하고 있어요. 경험을 통해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친구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 김수지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곱 살 꿈 이룬 천생 간호사

 

천생 간호사인 김 이사장이 간호사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일곱 살 때부터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여순반란’ 사건을 겪었다. 당시 한 간호사가 총상을 입은 청년을 밤새도록 극진히 간호해 결국 목숨을 살려내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때 나도 커서 아주머니처럼 사람을 살리는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입학해 50년 넘게 간호사로, 교수로, 호스피스로, 정신장애인 재활로 쉼 없이 달려왔다.

 

간호학계 대모가 생각하는 ‘좋은 간호’는 무엇일까. 그는 “좋은 간호란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이 대상자, 환자를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전인적으로 돌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의 아픈 몸을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아픔을 끌어안아 마음까지 돌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간호철학은 그가 개발한 ‘사람 돌봄 이론’에 그대로 녹아 있다. 알아봐 줌, 동참해줌, 나눔, 경청해줌, 동행해줌, 칭찬해줌, 안위해줌, 희망 불어넣어 줌, 용서를 구하고 용서해줌, 수용해줌 등으로 이뤄진 이 간호이론을 통해 소외된 만성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도왔다.

 

 

(중략)

 

출처: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news/88437#.VkkpeHrou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