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HRO를 연속 세번째 받아 10일째 쉬고 있다.
(HRO : hospital request off라고 해 환자수에 비해 간호사수가 많을 경우 원하는 간호사에게 off를 주는 것. 토요일에 할 일이 있는데 금요일 저녁에 근무 예정인 경우 미리 nursing supervisor에게 연락해 "금요일 저녁 HRO를 신청"하면 금요일 저녁 환자수가 적을 경우 off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일하다 다시 돌아가면 영어도 까먹고 일하는 것도 까먹을 것 같아 슬그머니 걱정은 되지만 막상 밤근무 일주일 넘게 쉬면서 못했던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니 재충전도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사실 밤근무 1년 6개월 넘게 하다보니 축적된 피로 탓에 신랑한테 짜증만 계속내던 요즘이였다.
지난 주, 이번주 통틀어 이틀밖에 일을 못했다. 이렇게 되면 다음 주에 들어올 pay check이 걱정되기 마련이다.돈 정말 얼마 안 들어오겠네....하며 병원 email함을 열었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있었다. New grads을 위한 orientation 스케쥴에 맞춰 매주 금요일마다 특별 class를 갖을 꺼라고. 더불어 journal club meeting도 있었다.그 길로 Healthstream (병원내 교육 시스템. 모든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이 웹사이트에 들어가 적어도 24시간 이전에 자리 등록을 해야 교육을 받을 수 있다.)에 들어가 교육 등록을 마쳤다. 교육은 보통 1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짜리도 있는데 교육을 받는 모든 시간은 시간당 수당으로 계산되어 salary에 포함되어 나온다.

이 곳 교육은 부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대학에서의 전공필수과목, 전공선택과목처럼 어떤 class들은 필수로 들어야 하며, 또 어떤 과목들은 자기 선택에 따라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된다. 그걸 병동 별 competency라고 하는데 이 competency는 보통 매년 renewal되며 그 competency들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manager 상담과 함께 잠시 일을 중단할 수도 있는 상황도 벌어진다.
많이들 알고 있는 ACLS와 BLS는 어딜 가나 필수인 certificate이고, 내가 있는 surgical unit & CDCR(죄수 병동)의 경우는 CDCR training 및 chemotherapy class, Wound Vac/care, CBI(continuous bladder irrigation), ACS(Acute coronary syndrome), stroke, airway management 1, arrhthmia class 등등이 필수가 된다. OBGY나ER, ICU의 부서는 특별히 sonogram class가 추가로 붙으며 ER이나 ICU, step down unit같은 곳은 airway management 1이 아닌 좀 더 심화된 과정인 airway management 2과정을 들어야 하며 ECCO(Essentials of critical care)라는 특수 과목도 이수해야 한다.
이 모든 과목들은 credit/CEU로 계산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간호사 면허증을 renewal해야 할 때 특별히 따로 보수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어제 금요일. 교육을 받으려 병원에 가니 Jeanell이 웃으며 반겨준다.
"Hey, Mindy....How are you? I'm so glad to hear that you are expecting....(be expecting : be pregnant)"
"Oh...no....We've been trying to make a baby, though....no good news yet."
Jeanell은 Versant program(New grads을 위한 orientation program) 때부터 알게 된 이 곳 병원 간호교육instructor다. 몇 달 전부터 이 사람 중심으로 해서 journal club meeting이라는게 생겼는데 한달에 한번씩 간호사들이 모여 journal을 읽고 공부하고 서로 토의하는 그런 모임이였다. 혹시나 이 모임도 따로 가입하고 등록해야 하나 싶어 며칠 전 Jeanell에게 문의메일을 보낸 터였다.
듣자 하니 모든 간호사들이 원하면 이 meeting에 합류할 수 있지만 발표자는 clinical ladder라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는 간호사들이 한다 한다. <clinical ladder? 그건 또 뭐야?>하고 묻자 각 병동별로 manager 동의를 얻어 따로이 특수 교육을 더 추가해 받아 competency를 높이는 교육기회라고 한다. 더 많이 아는 간호사는 더 많이 일하고 활동해야 하는 법. 교육을 받은 후엔 병동 간호사들 교육도 담당하기도 하고, 한국으로 치면CQI(continuous quality improvement)같은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일하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월급도 더 많이 줘....한번 해보지 않으련?> 속삭이는 Jeanell.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활동하고 하는 건 다 좋은데 안되는 영어로 다른 미국 간호사들 앞에서 journal 발표를 해야 한다는 건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생각해보겠다 하고는 우.선 발을 뺐지만.... 언제고 영어가 더 나아지고 내 스스로의 competency도 어느 정도 나아지면 한번쯤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journal club meeting은 한시간 좀 안되어 끝났다. 미국에 하도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40~50대 중년 남성들이 BMI가 30이 넘어 정상체중 범위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문제가 없다, 건강하다하며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해 나중에 병원에 오면 합병증이며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는..... 그래서 정상체중을 벗어난 환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교육시켜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journal이였다. 그러고보니 병동에서 chest pain이나 cholecystitis, DM으로 받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대체로 뚱뚱했던 것 같고, 그런 환자들을 받을 때마다 질병,증상, 약등등에만 focus해 교육했지 따로 특별히 체중 조절에 대해 얘기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틈나는대로 체중 조절에 관련한 diet과 운동법에 대한 수업을 듣던지 책을 보던지 해서 나름의 교육방법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드는데....
조금 지나 하이라이트 수업이 시작됐다. septic care라는 수업인데 막 취업한지 얼마 안된 New Grads들을 위한 수업이라 그런지 교육실이 금새 꽉 차 버린다. 보통 병원에서 수업을 하나 마련하면 대게 30~40명이 듣기 마련이다. 둘러보니 같은 병동에 일하는 Althea도 와있다. 경력도 많고 일도 참 잘하는 친군데 이렇게 또 와서 계속 교육듣는 모습을 보니 <아. 저래서 그렇게 일을 잘 하는구나.>싶은 생각이 든다. 1시간 반 정도 되어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한국에서의 병원 교육이 생각났다.
대학병원을 다니며 참 많은 교육을 듣곤 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CQI, 논문 발표, 중환자 관리과정을 제외하고는 딱히 생각나는 교육이 없다. 점심 거의 삼키다시피 겨우 챙겨먹으며 day근무 신나게 뛰고 나면 3시부터 4시...4시 반까지 교육이 있었고, 그 교육을 들을 때마다 참 많이 졸았던 것 같다. 근무 끝나고 나면 피곤함이 마구 몰려오면서 어찌나 졸음이 쏟아지던지. 모든 교육은 mandatory여서 집에 가고 싶어도 수선생님 눈치 못 이겨 졸졸 따라가 교육관 들어가 1시간 졸다 나오던 기억....
일주일 몇 시간씩 2~3개월 가량을 중환자 관리 과정을 듣기도 했고, CQI며 논문 쓴다며 몇 달을 논문 읽어대고 추려내고, 또 읽어대고 추려내고.... 겨우 써내려간 CQI와 논문 들고 병원 모든 간호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도 하는.... 그 과정속에서 나는 배운다기보단 고문을 당하는 듯했다.
내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하고 뭔가 한다 한들 내 경력에 보탬이 없었고 (나는 총학생회 간부경력과 입사 이후 5년 내내 매년 파업에 뛰어든 "경력" 때문에 진급이 전혀 될 수 없었다.) 따로 교육수당이랍시고 나오는 돈도 없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논문을 읽어대고 써대고, CQI하고 발표하고 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건데도 불구하고 그땐 참 그 배움에 대한 motivation 이 없었던 것 같다.수당이라도 좀 더 주면 동기부여가 팍팍 됐을텐데 말이다. (수당 나오면 논문이며 CQI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대며 늘 발뺌하던 다른 간호사들도 태도를 좀 바꿨을지도...)
며칠 전 step down unit에 다시 찾아가 manager, Karen과 얘기를 나눴다.
transfer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 언제가 좋겠냐 묻자, airway management 2와 ECCO 수업(10주 코스)을 듣고 와야 내가 적응하면서 덜 힘들 것 같다며 수업 부터 듣고 오라고 한다. 사실 따로이 공부하는게 있어 올해 말에나 갈 참이였는데 잘 됐다. 그래서 금요일 수업 들으러 간 김에 교육팀에 있는 Krystal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그 두 수업을 언제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봤다.
상황 보니 내가 New grad이 아닌 경력자기 때문에 따로 ECCO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다시금 Karen을 만나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눠야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듣고 가는게 좋겠단 생각이다. 안그래도 ICU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던 Edwin이 그 수업이 정말 좋더라고 강추하던 터였다. 그러고보니 10월엔 들어야 할 교육이 정말 많다. 한두달 전쯤 병동 manager가 preceptor training 받으라고 해서 거절했다가 10월에 듣기로 한 데다 transfer가려면 추가교육 더 들어야 하고.....몇몇 class들은 또 renewal해야 하고..... 그래도 한국에서처럼 스트레스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내가 한국을 떠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몸도 아프고 했지만 계속하고 싶은 공부를 이렇게 일하며 할 수 없겠단 회의감이 아주 강하게 밀려왔고, 힘들게 대학원까지 공부를 마친다 해도 파업 경력 때문에, 학벌 때문에 나는 그 병원에서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일찌기 감지했던 터였다. 한마디로 모든 것들이 버거웠다.
아직 대학원 공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아무래도 flexible한 스케쥴과, 사람을 거의 잡을 듯한workload가 없는.... 더불어 교육받는 족족이 수당으로 나오는 환경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그래서 언제고는 unit specialist가 되고 싶은 생각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