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밤근무에 제법 적응이 됐는지 근무 후 잠자는 시간이 5~6시간대로 꽤 늘었고, 쉬는 날에는 아침4~5시가 될 때까지 잠이 쉬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겨우 잠들곤 한다. 3일 연속 근무 후 하루 겨우 쉬는 날인데 이른 아침 3시 반이 되도록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를 켜고 끄적여본다.
지난 마지막 밤은 최근 들어 그나마 좀 힘들었던 밤으로 기억한다. 인계를 받자마자 charts를 펴드니 1시 반에 난 order가 아직 그대로 있고,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Travel nurse에게 인계를 받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바다.
안그래도 3일 내내 계속 새로운 환자만 다섯명씩 받아대서 시작부터 좀 짜증이 났고, shift leader인 Melinda에게 ”난 오늘도 새로운 환자 다섯명이야?”하고 살짜기 컴플레인을 했었다. ”그래도 나름 맞춘다고 노력했고, 그래서 다섯명 중 두 명은 어제 네가 본 환자야.” 미안하다는 듯이 살짜기 웃는 Melinda.
컴퓨터를 열어보니 그 두 명은 이미 퇴원하고, 그 방에 새 환자 두 명이 입원해있어 결국 새 환자 다섯명이였다. 다시 항의해봤자고, Melinda도 그런 항의로 늘 피곤해 할 것 같아 그냥 바로 일을 시작했다.
입원한 지 이틀이나 되었는데 home medication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어 인계때부터 간호사에게 ”이거 왜 clarify(Dr에게 물어보고 home medication을 어떻게 줄 건지를 명확히 하는 것) 안됐니?”하고 물어보니 바.빴.단.다.
”이건 왜 또 안 되어 있어? 이건 뭐야?”
”어라? 나도 잘 모르겠는데? 미안. 너무 바.빴.어.”
그래. 바빠서 못했다고 말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 수고했다 하고 씁쓸하게 웃어주고는 home medication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운이 좋게도 마침 담당 의사가 병실을 찾아왔다. 냉큼 붙잡고는 home medication을 clarify해달라 요구했고, 바로 약국에 fax 보내서는 약을 보내달라 했다. 그 과정에서 약 용량이 이상하네, 먹는 횟수가 이상하네 계속 약국에서 전화가 와대서 그 home medication 문제를 끝내는데에 30분 이상이 걸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환자는 완전히 upset!!!!!
”도대체 너네들 뭐하는 것들이야? 왜 내가 먹던 약을 안 줘?”
이 환자 bipolar history까지 있는데다 완전히 snap해서는 이성을 상실했다. 침대 위에서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나는 지금 이 문제를 발견했고,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이 일이 생긴데 대해 정말 미안한 마음이지만 네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다 힘들어져. 지금 막 약물 clarify를 마치고 약국에서 약을 기다리고 있어. 모든게 늦어진데 대해 정말 미안해.”
몇 번을 상황 설명하고 사과를 하고 나서는 그 앞에서 약국에 전화를 걸어 약 좀 빨리 보내달라 요청을 했고, 그렇게 약을 주고 나니 아까 자기가 너무 흥분했다며 사과하는 환자. ”Mindy 네 잘못도 아닌데 내가 너만 몰아부쳤네. 미안....”
”괜찮아요. I understand you.” 하고 돌아서는데 한숨이 푸욱 나온다.
드디어 한 건 마쳤다 하는 안도의 한숨.

이제 일 좀 해볼까 하고 돌아서는데 저쪽에서 반짝거리는 call light. 병실에 들어가니 ESRD 환자 아프다고 난리다. 다른 약은 싫고 Morphine만 달란다. 사실 그 날 퇴원했어야 할 환잔데 갑자기 vomiting을 하면서 퇴원이 취소됐다. Vomiting할 이유가 전혀 없는 stable condition이였는데, 아마도 집에 가기 싫었던 것 같다. 혈당이 떨어진 것 같다며 재달라 난리고, 재고 나니 없는 알사탕을 달라 또 난리.
”우리 병원은 그런거 없는데? 쥬스는 안되겠니?”
”아니 무슨 병원이 그런 것도 없어? 너네 환자를 이렇게 다뤄? 이런 씨...”
흥분이 극에 달한 것 같은 얼굴이다. 나는 환자가 흥분하면 그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나서 일부러 그 병실 앞에서 전화를 건다. <내가 적어도 지금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이해하달라.>라는 환자에 대한 일종의 메세지다. On call Dr에게 전화걸어 상태를 notify하니 Dr까지 흥분해서는 ”아니. 퇴원하기로 한 환자가 무슨 Morphine이냐. Tylenol이나 먹으라고 해. 이런 씨....”하며 난리다.
내가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Tylenol 안 먹겠다고 하고 지금 vomiting 두 번이나 했어. 뭔가 줘야 하지 않겠니?”
그러자 그제서야 Morphine과 Phenergan을 딱 한번씩만 주라는 처방이 떨어졌고, 병실에 들어가 약을 주고 나니 평온해진 환자.
”애기처럼 굴어서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어.”하며 내 팔을 가만히 쓸어만진다.
속은 탈대로 타지만 그럴 때마다 늘 나오는 서비스 멘트.
”괜찮아요. 빨리 나아지길 바래요.”
이렇게 저렇게 응급처방 받고 처치하고, 또 연락하고 처방 받고 처치하고 하다보니 금새 이른 아침 4시다. 어느정도 정돈이 되었고, break time을 가지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곳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환자며 보호자, 그리고 의사들의 그 흥분을 모두 받아줘야 하는 상황 그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의사가 흥분하는 것까지 모두 받아줄 필요는 없지만 어쨌거나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시점에서 의사와 싸워버리고, 그렇게 처방을 못 받게 되면 사태는 더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 잠시 암 환자들을 본 적이 있다. 내 잘못이 아니였는데도, 내가 그 날 charge 일을 했다는 이유로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힐 뻔한 경험이 있다. 아무리 상황 설명을 하고 이해를 부탁해도 전혀 먹히지 않는 보호자. 결국 시간이 지나고 화가 누그러지고 나서도 무슨 나를 죄인, 시녀 대하듯 하던 그 보호자를 보며 어쩌면 간호사 일이 힘든 이유가 이런데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Vital signs을 체크하고, 약을 주고, physical assess를 하는 바쁜 일들은 몸이 바쁘면 그만이지만 간호사라는 이유로 남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모두 받아줘야 하는 상황. 그래도 다행히 Born to be a nurse여서인지 나 역시도 “Shoot!!!! Damn it!!!”을 남발하다가 상황이 진정되면 금새 환자에 대한 이해와 sympathy로 그 환자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진다.
간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얼마전 LA에서 외삼촌과 외숙모를 잠시 만났는데, 그 두분이 한국으로 돌아가셔서는 어머니에게 내가 그동안 너무 고생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얘기 듣는 중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단다. (나는 그저 아주 잠깐 그동안의 무용담을 늘어놨을 뿐인데~) 그래도 얼굴은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해서 안심이라며 울먹이는 엄니. 그러고보니 엄니 얼굴 안 본지도 벌써 2년 8개월째가 되어간다.
“그럼. 얼굴 좋아져야지. 요즘 비싼 홍삼 먹어주고 있는데…..”
내 남자친구 소식에, 결혼준비 소식에 나름 기대가 많으신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참 많다. 그러고보니 아파트 입주하기까지 딱 일주일 남았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이 곳에 오기까지 3주 남았다.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것 같아 나 역시 그 설레임이 가슴선을 넘어 머리끝까지 달해있는 요즘이다.
그나저나 교회에서는 남자친구가 오면 빨리 소개시켜달라고 난리다. 약식이라도 간단히 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주문도 들어온다.
남자친구 오면 꽁꽁 숨어버릴 참인데…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