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고 그리고 또 다른 시작
  • 조회수: 8438 | 2008.04.15

너무도 간만에 느끼는 여유로운 아침인 것 같다. 조금은 빡빡한 오리엔테이션 일정에 너무 지쳤던지라 금, 토요일 이틀 day offs동안은 실컷 잠을 자둬야겠다 생각했는데, 이미 몸이 이른 시간에 익숙해진 탓인지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창가에 둔 자그마한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 interview를 마치고 orientation 일정을 기다리던 지난 12월경, 한국에 있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5년 5개월을 함께 했던 입사 동기. 부산에서 혼자 몸으로 서울 올라와 참 많이도 힘들어했던 그 친구가 작은 화분을 가져다가 무언가를 키워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때 당시 나는 지난 2년간 영어 공부와 영주권 신청 문제로 한국 한번 나가보지 못해 이미 심신이 지쳤었고, 새로이 시작될 미국에서의 임상 생활에 대해 흥분과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래서 Denver에서 이 곳 Bakersfield로 오자마자 마켓에 나가 작은 화분을 하나 사왔고, 그렇게 내 방에 작은 친구를 두게 되었다. 이 화분을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나면서 심적으로나마 우리가 아직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문득 한국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봤다.
참으로 흥미로운게,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일을 하면서 좋았던 순간들이 참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힘들었던 순간들이 먼저 떠오른다. 참으로 힘들게 들어간 병원, 눈물을 훔치며 일을 배웠던 신규 생활 1년, 너무도 길었던 02년 파업,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시간에 쫓겨 곧잘 짜증스런 얼굴로 뛰어다니던 내 모습. 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병원 시스템의 변화로 안그래도 바쁘게 돌아가던 병원일이 더 바빠졌다. 생리가 시작되는데 탈의실에 들어가 생리대를 꺼낼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 어느 날 병동을 뛰어다니다 문득 이렇게 일하다 병동 바닥에 쓰러져 급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NCLEX-RN/CAT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 가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고, specialist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되도록 빨리 병원에서 탈출해야겠단 생각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렇게 04년 11월에 NY주 license를 취득했고, 곧바로 미국행을 준비했다.
많은 간호사들이 착각하듯이, 나 역시 license만 있으면, 미국에 가서 바로 취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영어는 취업하고 일하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착각이였다.


05년 10월 말 사직을 하고 건너온 미국땅.
이미 한국에 있을 때 TOEFL overall 점수를 받은 상태였기에, 나름 영어에 대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고,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곧바로 speaking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공부한 영어는 이 곳 미국땅에서의 생활 영어와 너무도 달랐다. 

3개월쯤 지나 간호사 특유의 조급증이 발동했고, 빨리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날이 더해갔지만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06년 8월 영어점수가 없는 상태로 Denver에 있는 병원들을 방문하며 job interview를 시도했고, 그렇게 두 곳에서 job offer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영주권 신청에 관련한 process를 모르던 이 두 기관은 서류 작업을 자꾸만 미뤘고, 그 중간에 quota가 닫히면서 모든게 취소되었다.

 변호사로부터 참으로 유감이다라는 전화를 받고는 한달을 울며 지냈다.

지난 한국에서의 힘든 시간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 할 수 있을만치 나는 심한 우울증을 느꼈고, 한달간을 먹고 토하는 bulimia 까지도 경험했다.

 한달이 지나 정신을 차렸을 땐 몸이 엉망이 되어 있었고, 통장의 잔고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버텨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고, 그렇게 나는 그 곳에서 나름 살 길을 찾아나갔다.



10개월이 지나 지난 07년 7월. 이민국에서 문호를 연다는 발표를 들었고, 나는 주저없이 California로 건너갔다. 지난 06년과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sponsorship과 legal process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병원을 물색했고, 그 와중에 San Joaquin hospital hospital에 근무하는 박두일 선생님과 연결이 되었다. 
그때 당시 이미 영어 점수를 받은 상태였기에 병원으로부터 무리없이 job interview를 볼 수 있었고, 한국에서의 5년 5개월 경력을 인정받아 job offer를 받고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맺고 계약서를 받아 나오면서 참 많이 울었다.
이제 겨우 시작하게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성취감, 그리고 지난 시간들에 대한 서러움 과 외로움. 만감이 교차했다.

Quota는 7월 한달만 열리고 바로 닫혀버렸다.
이미 많은 신청자들이 대기였던지라, quota가 열리자마자 신청이 폭주해버렸고, 그 많은 서류들을 process하기엔 이민국 인력이 딸렸는지, 한달 반만에 나와야 할 work permit이 3~4달이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그나마 나는 다행이였다. Boston과 Michigan에 있는 친구들은 5달이 지나서야 work permit을 받았단다.

Social security number(미국의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나서 California nursing board에 제출해 California permanent license를 받았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orientation 일자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Bakersfield에 있다.

이미 Orientation 5주째 접어드는 무렵, 어느 ELS에 가도 제일 말 잘하는 학생으로 통하던 나는 병원에서 제일 말 못하는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모든 물자가 풍부해 아껴쓸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 언제든 갖다쓸 수 있고, 환자는 겨우 다섯 명만 보며, V/S이나 I/O며 기타 bed side care를 care partner(간호조무사)들이 다 해주기에 내 업무가 줄어 한국보다는 훨씬 일하기 좋은 환경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가장 기본되어야 할 환자 교육이 쉽지가 않다.
착한 환자들을 만나면 그래도 별 문제 없이 모든게 진행이 되는데, drug user들이나 병원일에 모두 의심을 품고 의료진이 하는 모든 일들을 일일이 적어 소송할 준비나 하는 예민한 환자며 보호자들을 만나면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래서 다시금 영어 책을 쥐고 문법부터 다시 공부 중이다.

지난 2년간의 이야기들을 2페이지로 압축해낼 수 있음에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더불어 지난 2년간 힘든 시간 잘 버텨낸 데 대해 대견함을 느낀다. 사실 많은 이들이 나의 병원취업을 such a great achievement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지난 시간들을 통해 독립적이 되고, 더 강해진 데 대해 점수를 주고 싶다.

앞으로는 orientation과 관련해 병동에서 보고 느낀 임상환경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아마도 많은 간호사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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