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이 미숙한 것은 배우면 되지만 성품은 변하지 않지요.”
  • 조회수: 3693 | 2014.04.23
내 협력의사 P 께서는 휴가를 갈까 말까 한다더니 어느 날 한달 휴가를 간다고 사무원이 내게 알려주었다. 한참 일을 재미있게 배우는 중인데 한 달 공백이 생기나 해서 속으로 아쉽게 여기고 있는 데 닥터 P가 환자들에게 당신이 휴가를 가도 내가 와서 환자를 계속 진료를 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였긴 했지만 약간 걱정도 되었다. 의사와 같이 있으면 환자를 보다가 모르면 그때 그때 물으면 되는데 혼자 오피스에 있으면 환자들이 나만 쳐다 볼텐데 내가 과연 혼자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약간 고민이 되었지만 못하겠다고 하기는 싫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그동안 더 부지런히 배우리라 마음을 다져 먹고 아주 일찍가서 그날 약속이 되어있는 환자 병력도 읽고 검사결과, 초음파검사도 미리 읽어보고 약은 어떤 것이 들어가나 다 한번씩 훑어 보았다. 그리고 읽어 보아야 할 검사 결과와 엑스레이 결과와 또 다른 의사들에게서 온 편지 등등 큰 박스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모두 읽고 의사에게 내가 다 읽고 환자에게 연락 해야 될 것과 그냥 챠트에 넣어도 될 것을 다 체크 했고 잘 모르겠는 것만 몇개 여기 남았다고 했더니 의사는 활짝 웃으면서 고맙다고 어린애 처럼 좋아 하였다. 처음에는” 이것 반씩 나눠서 읽읍시다” 해서 반씩 읽었는데 금방 알아서 미리 일을 해 놓으니 아주 좋아 하였다.

Specialist 들이 쓴 편지는 표현이 아주 우아하여서 임상지식 뿐 만이 아니라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고 카피를 하여서 여러 번 읽어보았는데 내게는 새로운 표현들이 많이 등장을 하였다. 박스에 쌓인 많은 서류들을 꼼꼼히 그리고 천천히 읽으면서 이제 이런 종류의 reading 과도 친구가 되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나는 읽는 게 좋아, 재미 있어. 맨날 떠들다가 이제 되게 걸렸네 “ 하고 혼자 웃었다.


환자가 휴가간 동안 이 닥터김이 자기를 진료 할 것이냐고 하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정정을 하였다.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간단 한 것만 진료합니다. 닥터 P nurse practitioner 예요. 의사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냥 김 이라고 부르세요” 환자는 대답 대신 웃었지만 나는 아주 불편 하였다.

학생 때 실습을 나갔더니 환자들이 NP, MD 가 구별이 안되니까 다 닥터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는데 NP 에게 자꾸 doctor, doctor 하니까 NP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환자들에게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싸우다가 지쳐서 이제는 포기 했어요. 아무리 의사가 아니 라고 이름 부르라고 해도 자꾸 의사라고 불러서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신경 안써요. 소개할 때 의사 라고 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그냥 놔두지요.” 그녀는 푸른 눈의 금발미인으로 아름다운 외모 보다 마음씨가 더 고운 ER에 근무하는 소아과 전문 NP였는데 같이 일하는 pediatrician에게 거의 묻는 일 도 없이 얼마나 환자진료를 잘 하는 지 부러운 생각이 절로 들었던 기억이 났다.


환자들 중에는 아프기 때문에 의사노트를 받으러 오는 환자가 많았는데 이 의사노트에는 꼭 의사 이름, 면허번호가 들어간 스탬프를 찍어야 하기에 나도 내 이름과 면허번호 그리고 내 타이틀 NP가 들어간 스탬프를 부랴부랴 주문을 하였다. 친구가 취직을 하면서 의사에게 가서 써야 할 서류가 있다기에 나도 써 줄 수 있으니 가져오라고 하였더니 좋아라고 가져왔다. 마침 의사가 그 전날 환자에게 비슷한 것을 써주기에 눈 여겨 보았다가 내가 친구 것을 쓴 다음에 이것 이렇게 썼는데 맞게 잘 썼느냐고 물었더니 잘 썼다고 하여서 KYUNGSOOK KIM. NP. NYSLIC (New York State License) 번호가 찍힌 스탬프를 쿵 하고 하나 찍어서 주었다. 이런 서류에는 스탬프가 꼭 들어가야 한다니까. 친구는 의사에게 안 가고도 일이 해결 되었다고 좋아하였다.


의사 P는 나와 종교가 다르지만 아주 정직하여서 이런 사람과는 오래 같이 일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는 이번 휴가 이야기가 나오기전에도 앞으로 내가 그녀의 환자를 인계 받을 사람이라고, 자기에게 휴가를 주고 좀 쉬게 해 줄 사람이라고 스스럼 없이 환자 들에게 소개를 하여서 내가 좀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일을 잘하는 NP 보다는 나같이 환자에게 공손하고 친절한 사람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배우려고 애를 쓰는 내가 아주 보기 좋다고 또 여러 가지 좋은 말로 칭찬을 하면서  왜 실력 좋은 NP 들을 놔두고 나를 택했는냐는 내 당돌한 질문에 솔직 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나는 닥터 P에게 나를 그렇게 믿어 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일이 미숙한 것은 배우면 되지만 성품은 변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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