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그 영원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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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처음 Step down unit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난다.
나름 많이 준비하고 들어간 critical care unit이였는데,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한동안 주눅이 들었다.
일 때문에 주눅이 들었던 게 아니라 영어, 대화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
우리 병원의 특징이..... Med/surg와 Tele는 거의 70~80% 이상이 필리피노고,
step down과 ICU는 70~80% 이상이 native american이다.
PACU나 cath lab, surgery같은 특수파트는 80~90% 이상 되는 듯 하다.
경험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필리피노 간호사들은 한국인에 비해 영어를 잘 해도,
영어가 second language 인만큼 액센트도 있고, 표현들도 간결한 편이다.
그래서 알아듣기가 정말 쉽다. 하지만 native american은 다르다.
일단 형용사와 전치사들을 많이 쓰고, 문장이 길고....말이 빠르다.--;
Step down 에 들어가 한 6개월간 고전하다 조금씩 늘기 시작한 영어.
그러면서 나의 목소리도 조금씩 커졌고,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대화는 어느정도 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는 듯한 이 답답한 영어.
그리고 ICU로 온지 한달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와 똑같은 기분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
처음 ICU fellowship program에 지원했을 때 설마 날 떨어뜨리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건사실이다.
이미 매니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데다 각종 certification에
SDU에서 shift leader까지 했던지라 모두들 내가 ICU로 가는걸 의심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했을 때도 "빨리 배우고 빨리 성장해서 1년안에 CCRN이 되고
shift leader가 되어보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일을 하다보니 익숙치 않은 해부학적인 용어들이며
의학용어들이 난무하는데다 환자 상태에 대한 detail한 표현들이 너무 많았다.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intonation은 어찌해야 할지 헷갈렸고,
대부분이 젊은 native american이다보니 말하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step down도 사실 tele나 med/surg와 달리 native american이 많은 편이라
그 속에서 일하면서 나름 영어표현을 많이 배워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늘긴 늘었어도 아직 그 수준은 표준 이상으로 넘어서질 못하는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두 명의 프리셉터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끔 많이 바빠 도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Girl, you are on top of it."란 칭찬을 종종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녀들과의 대화를 잘 못 따라간단 느낌을 받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자꾸 필요 이상의 대화를 줄이는....
정말 무뚝뚝한 간호사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너무 과묵한, 영어준비가 좀 더 필요한 그런 간호사로
평가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critical care 책을 읽고 문제를 풀 때마다 좋은 표현들을 보면
따로 수첩에 적어놓고 자주 읽어가며 외우는 중이다.
평소 발음하기 힘들었던 단어들도 따로 정리해서 자주 읽어주고 있다.
자꾸 읽다보면 익숙해질테고, 그러다보면 또 늘 것 같기도 하다.
오늘 ECCO 수업이 있었다.
나와 같이 fellowship program에 참여하고 있는 한 베트남 간호사가 있는데,
미국에서 직장생활도 했었고, 널싱 교육도 받은....미국생활을 꽤 했던
그런 사람이라 그런지 영어 발음이 정말 좋고 말도 참 잘한다.
그 친구가 널싱스쿨에 있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 포함 영어가 second language 였던 학생이 딱 두 명이였는데,
교수가 자꾸 두 사람을 가리켜 "영어가 딸리니 환자와의 대화며 교육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이는 환자의 safety 에도 직결되는 문제다."며
계속 warning 을 주었다고 한다. 결국 다른 한 명은 중간에 포기하게 되었고,
자기 혼자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그러면서 자기는 지금도 일을 할 때마다 영어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단다.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말 해주었다.
"물론 임상에서 환자와의 대화, 그리고 환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간호는 입으로만 하는게 아니거든.....
말 잘하는 간호사가 되기 보단 실력과 지식으로 간호하는 사람이 되는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나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CMSRN과 PCCN을 딴 이유다.
영어가 잘 안되니 실력과 지식으로 승부하자.......
그렇다고 영어 공부에 소홀하지는 않겠다.
미국에 살면서 정말 평생 해야 할 게 영어 공부인 것 같다.
6개월만 참고 더 노력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