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을 보고 있었다.
병원 번호로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지 하고 받았더니
얼마전 나를 인터뷰했던 Ronnie다.
"우리는 너를 ICU fellowship program에 넣기로 결정했어.
Offer를 받아들일지 말지 대답을 듣기 위해 전화했다."
그 사람 많은 마켓에서 장 보다가 갑자기 들떠가지고
목소리 높여 Yes! Yes!하고 offer를 수락했다.
이주전쯤이였다.
지칠대로 지친 신랑은 콜로라도로 가서 직장 친구들도, 보스도 만나고 싶어했고,
나름 휴식도 취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2주 휴가를 신청했고, 신랑 혼자 콜로라도로 보내고는
나 혼자 집에 남아 엠마를 보기로 했다.
간만에 엠마와 주말 껴서 3일 (메모리얼 데이가 껴서 데이케어가 쉬는 바람에)
하루종일을 보내려고 하니 죽을 맛이다.
애기를 좋아하고,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 줄 아는 그런 엄마들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마냥 즐겁겠지만,
일하는데에 더 익숙한, 사회생활을 포기할 줄 모르고,
또 포기할 수도 없는 이 직장인 엄마는 정말 하루종일 아이와 놀아주는게
병원에서 그 무거운 환자들 엎치락 뒷치락하며 간호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래도 나름 시간을 내어 모자이크도 하고, 마스크도 만들고,
음식도 같이 만들고, 틈날 때마다 여기저기 다니며 같이 놀아주었더니
이제는 제대로 맛들였?는지 틈날 때마다 "I want craft!"하고 계속 졸라댄다.
craft 재료비 대는 것도 정말 일이다.--;
조금의 농을 섞어 재료비를 대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엠마가 데이케어에 간 사이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2시 반에 ICU fellowship program 인터뷰가 잡혔다.
며칠 일찍 인터뷰를 본 친구 말로는 굉장히 편하고 부드러운 그런 인터뷰 자리였다는데,
몇 명이 다함께 앉아 얘기하는 식이라고 해서 나는 나 말고도 지원자 두어명이 더 나와
그룹식으로 토의하며 인터뷰하는 자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2명의 ICU 매니저와 ICU 디렉터가 앉아있었다.
비싼 프로그램이고 더 좋은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때문인지
단 한명의 판단으로 사람을 hire하지 않겠다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ICU에 가려는 목적,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
간호사로서의 나의 강점,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건지
등등을 물어왔고, "왜 우리가 너를 hire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15분간의 인터뷰를 마쳤다.
몇 번의 인터뷰 경험이 있었기에 막힘없이 대답하긴 했는데,
그래도 인터뷰는 인터뷰라 그런지 많이 떨렸다.
마치고 나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지?"싶을 정도다.
최근 ICU에 빈자리가 많아지면서 많은 travel nurse들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되었고,
단기간 계약을 맺고 들어오는 간호사다보니 오리엔테이션이 짧아,
이런저런 document며 policy 관련한 미스들이 종종 있었던 터다.
더불어 오리엔테이션을 줄 프리셉터들이며 CN, shift leader까지 자리를 떠난터라
그 자리들을 메꾸기 위해 ICU는 ICU fellowship program이란 걸 만들었고,
병원내부 타부서에서 ICU로 오고 싶어하는 간호사들을 위해 좀 더 organized된
프로그램을 제공해 큰 문제없이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이번 fellowship program이 3차고 이미 1,2차로 선발되어 지금 ICU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아주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간호사로 일하는 그 누구라면 늘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듯이,
나 역시도 늘 고민 또 고민한다.
지금이야 bedside care가 좋아 이렇게 일하고 있지만
내가 40대 후반이 되어서도, 5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critical care를 계속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엠마는 커갈테고, 영주권이 나오고 경력도 더 탄탄해지면 어디로든 옮겨서
병원도 새로 구하고, 집도 사고 그렇게 정착해야 할텐데.....
일하면서 이런 모든 것들을 handle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나이 40~50이 가까워지면 NP가 되고 싶을 수도 있는 일이고,
어찌됐건 젊을 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이 배우고,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던간에 ICU 경력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ICU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ICU fellowship program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 일하는 부서에 타격이 컸다.
2주 휴가 시작되는 날 아침 나는 우리 부서 매니저와 면담을 했다.
사실 언제 어떤 일로든지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면담을 신청하면
바로바로 즉각 반응하는 매니저였는데 ICU로 옮기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난 뒤
2주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받은 면담요청이라 좀 많이 떨렸다.
누구나..... 나는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정말 좋은 간호사다라는 자부심을 갖겠지만
나 역시 내 스스로 정말 일 잘하는 좋은 간호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병동에서 CN들을 support하는 유일한 shift leader고,
New grad preceptor program을 마친 유일한 preceptor고,
유일한 resource RN이고 computer super user고,
다른 누구보다도 policy에 대해 더 많이 알고, IV를 잘하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면서 간호사건 조무사들을 제일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다.
타부서에 비해 워낙 작은 부서다보니 자연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그래서 내 역할이 더 크게 부각되었는데,
내가 떠나게 되면 그 모든 자리들이 비게 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 입장에선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 ICU 지원하기 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critical care 디렉터에게
털어놓았고 (사실 이 사람은 내가 med/surg에서 SDU로 지원할 때
SDU 매니저로 나를 인터뷰하고 나를 hire했던 사람이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솔직히 SDU를 떠나는 걸 주저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그녀는 "모든게 God's plan."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떠나는 것도, 그리고 내가 떠난 뒤 SDU가 스스로를 추스리는 것도
모두 God's plan이라고. 모두 다 괜찮을 꺼라고 그러니 ICU로 오라고 했었다.
매니저인 Laurie는 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곤 떠나보내게 되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고.... 그래도
네 스스로를 위한 발전의 기회로 ICU에 가는 거니 너무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직 인터뷰도 보기 전이니 ICU에서 나를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자
이미 매니저들끼리는 얘기가 끝났다며 formal interview만 남았을 뿐
내가 ICU에 가게 되는 건 거의 확정되었다고 했다.
기쁘지만.... 많이 슬펐다.
이 병원에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터를 마련해준건 med/surg긴 해도,
내가 간호사로서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고향같은 이 곳인데
막상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참 아프다.
그렇게 Laurie와 나는 미리 마지막 인사를 하며 아침부터 울었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SDU로 오라고..... 행여나 다른 병원으로 갔다가 다시
이 곳에 오게 될 경우엔 SDU로 오라고.... 자리가 없어도 네 자리는 만들어주겠다며
마지막까지 안아주는 매니저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미국 와서 들은 최고의 compliment인 것 같다.
어제 근무를 나가니 두 명의 간호사가 물어온다.
"ICU 간다며? 그래서 너 대신 좋은 간호사 심어놓으려고 Kumhee 데려온거야? 하하."
"이제 알았어? ㅎㅎ"
몇 달 전 우리 병동에 새로 투입된 한국간호사가 있다.
한국에서라면 정말 우러러봐도 한참을 우러러 봐야 할 그런 경력의 간호사인데,
미국이라서, 일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로 나는 그 선생님과 거의 친구처럼 지낸다.
간호사로서 경력이 생기다보니 이제는 간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간호에 대한 철학, 그리고 지식의 깊이같은게 느껴진다.
내 블로그 타이틀이 "Use your hands, head and heart in patient care."다.
간호는 가슴으로만 하는 것도, 머리(knowledge)로만 하는 것도, 그리고 손(skill) 으로만 하는게 아닌
이 모든게 모두 잘 어우러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Kumhee 선생님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정말 몇 안되는 간호사들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따로 매니저에게 적극 추천을 했고, 그렇게 우리 병원, 우리 병동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말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짧은 시간안에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얼마 안되는 지난 몇 달간 이미 이 선생님은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매니저와의 마지막 면담 자리에서 "Kumhee가 너의 좋은 replace가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게 God's plan인가 싶으면서 마음의 부담이 좀 덜해지는 것 같다.
fellowship program까지는 이제 한 달 남았다.
떠나기 전에 나는 내 자리를 메꿀 새 간호사를 트레이닝 시켜야 하고,
정식으로 매니저에게 떠난다는 통보를 해야 하고, 또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너무도 좋아하던 곳이라 떠나는게 참으로 슬프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 앞에 많이 떨리기도 하고, 기대도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간만에 근황을 전하며 긴 글 적어본다.
그리고 나지막히 내 자신에게 화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