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P
  • 조회수: 4355 | 2008.05.22


직원 개개인에게 주어진 ID로 login을 해서 power chart를 열면 소속 병동의 환자 목록을 볼 수 있고, 그 중 자기가 맡은 병실 번호들을 따로 클릭해서 나만의 목록으로 만든 후 일을 시작하는게 보통이다. 자신이 맡은 환자가 아닌데 환자 chart를 열어 열람한다던지, 자신의 검사 결과를 따로 열어 본다던지 하면 violation에 해당되니 조심해야 한다.
 며칠 전이였다. 그 날도 다섯명의 환자를 맡았고 환자 전체 목록을 열어 내 환자를 추려내는데 어느 환자 이름 앞에 노오~란 별이 하나 떠 있다. 특별히 confidentiality 에 주의가 필요한 환자니 조심하라는 경고다. 이 경우는 VIP가 아니면 prisoner다.
 ”Mindy, 이 환자에 대해서는 내가 특별히 말하고 싶은게 있어. 이 이름 앞에 있는 별에 대해 들어봤지? 이 사람은 prisoner야. 언제나 이 사람 방에는 두 명의 guards가 있어. 만일 guard가 한 명 밖에 없다거나 아예 없다면 그 방에 들어가지 마. 그리고 절대 네 개인적인 것에 대해 물어올 때 대답하지도 말고, 그 사람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묻지 마. 그저 환자로 보고 그 사람이 환자로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간호해주면 돼.”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일명 깍두기 형제들을 한두번 간호했었다.
등짝에 아주 온갖 험악한 그림들로 낙서를 해서는 뭘 그리 자랑하고 싶은지 4인실에서 웃옷을 벗고 다녔던..... 그래서 같은 병실 환자, 보호자들이 겁에 질려 뛰쳐나와서는 병실 바꿔달라고 요청해대는 통에 병실 들어가 ”옷 입어주세요. 제가 입혀드릴까요?” 하고 옷 입을 때까지 째려보기도 했었고, metal alergy가 있어 청진기로 인해 목에 생긴 skin trouble을 가지고 ”어제 남자친구랑 재미 좋으셨나봐요.”라고 건들대는 사람에게 ”간호사 나오는 포르노를 많이 보셨나봐요. 그런 농담 상당히 불쾌하니 주의하세요.”라고 쏴붙이기도 했던 기억.
그런데 prisoner?....... 사실 한국에선 prisoner 환자를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policy도 없을 뿐더러 그 사람들이 치료받는 기관이 따로 있을 줄로 안다.
이 곳 미국에는 곳곳 county에 prison이 있고 그 곳 prisoner들이 가까운 병원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곧잘 prisoner를 볼 수 있다고 한다.
 
 Preceptor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두 명의 guards가 환자 옆에 앉아있었고,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팔 다리에는 shackle이 채워져있었다.
그 shackle을 보는 순간 ”환자”의 개념은 희미해지고 ”prisoner”의 개념이 더더욱 불거짐을 느꼈다. 팔 다리에 그려진 tattoo들이 그 한국에서 보던 깍두기들의 것에 비할 바가 못됨에도 불구하고 그 tattoo들 조차도 왠지 특별하게만 보인다.
기본 assessment를 마치고 아침 투약을 하고는 나오는데 그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날 왜 나는 그리도 튀는 노란색 병아리 무늬의 scrub을 입고 나온건지.
 하지만 몇 번 그 방을 드나들면서 그런 나의 tension은 누그러졌고, 그 사람이 나를 간호사로 존중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입원 전 병원 policy에 대해 들어서인지 ”아프다.”, ”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빼고는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였다. 미국 사람들 좋아하는 그 흔한 농담 한마디 안 하고 말이다. 되려 guards들이 ”Mindy, do you like baseball? Which sport do you like? Are you from China? (얘네들 눈에는 내가 중국녀로 보인단다.-_-) Are you a new here?”하며 환자 앞에서 마구 질문을 해댔다.
 <내가 지금 저 환자 앞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해 말아야 해?>하며 헷갈리는 상황. 그렇다고 그 앞에서 hospital policy 운운하며 <나 대답 못 해. 그만 좀 물어봐.>하고 말하는게 정말 웃길 것만 같고. 늘 그렇지만 전에 접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적절하고 적절하지 않은지에 대한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오후 2시쯤 되었을까. 환자의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고, 담당 Dr.는 ambulation을 시작하라는 order를 냈다. 환자 방에 들어가 IV line들을 unhook했고 운동을 권했다. 그 말에 두 명의 guards는 그 두 사람 양 손과 양 발을 shackle로 다시 묶고는 병실 복도로 같이 나와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딱딱한 복도 병실에 그 shackle이 긁히면서 내는 metal음이 너무도 선명했다.
병동 복도에 나와있던 모든 환자, 보호자들의 시선들이 그 사람의 shackle위에 모아졌고, 조금은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게 무슨 confidentiality야.”하고 좀 짜증이 났더랬다.
 물론 그 사람만을 위한 운동 공간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 prisoner요.> 광고하듯 손 발에 shackle을 달고는 양쪽에 guards 끼고 병동 복도를 걸어다니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다음 날 교육관 빌딩에서 교육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병동에 볼 일이 있어 들렀는데 staff lounge로 가는 길에 그 사람의 병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며 문 열린 병실 안을 보니 환자가 그대로 누워있었고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Hey...”하고 웃으며 손 흔들어주니 그쪽에서도 ”Hi.”하고 빙긋이 웃어준다.
 속으로 <그래. 당신도 몸 아파 들어온 환자인데.... 어제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미안해>하며 조용히 사과했다.
 
 그 며칠 후 다시금 목록에 새로운 별이 떴다.
 ”Mindy. 이 환자는 내가 볼께. 너는 이 환자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말고, 물어보지도 마. 그 사람 병실에는 assigned nurses들만 들어갈 수 있단다. 그러니 병실에 들어가지도 말고. 알았지?”
 별을 보던 순간 인가 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celebrity라도 입원했나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묻지도 않았고 chart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 것이 그들의 privacy에 대한 요구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간호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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