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am so proud of you."
-
조회수: 3656 |
2014.02.24
NP가 되면 보수교육에 계속 다니면서 공부를 해서 75 크레딧을 5년안에 이수를 하여 proof of attendance, 1000 clinical hours와 함께 제출을 해야 시험을 다시 보지않아도 board certification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루 종일 세미나에 참석해서 공부해도 주는 크레딧은 6-7 점에 불과하니, 75점을 채우려면 부지런히 세미나를 찿아 다녀야 한다고 하였다.
NP seminar에 먼저 다녀온 친구는 제약회사에서 스폰서를 해서인지 호텔도 아주 호화로운데다 음식도 고급이고 무료로 NP들에게 나눠주는 물건도 많고 크레딧도 따지만 간호사들만 위한 세미나 보다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
세미나에 가보니 의사처럼 처방권이 있는 NP들이 모여서 하는 세미나여서인지 수십명은 족히되 보이는, 하나같이 훤칠한 키에 핸섬한 젊은 백인 남자들이 대부분인 제약회사 representatives들이 자기네 회사에서 개발한 약에 대해서 기존의 약과는 다르게 이런 이런 좋은점이 있다는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NP로 경력을 쌓아서 내 practice를 오픈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나중에 내 오피스에 가져다 놓고 환자분들에게 잘 설명해 드리리라 마음을 먹고 신장모형과 참으로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심장 모형 그리고 동맥경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도 하나씩 집어들었다. 이것들을 집에 가져와서 들여다 보는데 이제 NP로서 걸음마를 떼는 수준임에도 벌써 내가 무슨 큰일이나 이뤄낸 것 같이 아주 흐뭇하였다.
그 다음 세미나는 NP. PA. MD가 다같이 모여서 Manhattan의 Jacob Javits Convention center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내가 거의 30년전에 엔클렉스-RN시험을 보기 위해서 왔던 곳이어서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는 미국 초년병 시절이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혹시 시험 장소를 못찾을까봐 친구하고 사전 답사도 하고 시험 당일 날은 무척 일찍 도착한 기억도 났다. 시험을 보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그때는 컴퓨터가 아니었음) 생년월일을 쓰는데 출생년도 숫자를 뒤집어 써서 나를 두살짜리로 만들었다. 한참 시험을 보고 있는데 감독관이 다가와서 내 출생 연도를 손으로 가르켰다. 그때까지도 내 실수를 알지 못한 나는 왜 그러느냐고 약간 짜증을 내었다. 그는 내 귀에 대고 "Were you born in that year?"하고 물었고, 그때서야 나는 알아차리고 얼른 고쳤다. 시험이 끝난 후 나는 그분께 고맙다고 했더니 그분은 웃으면서 “간호사 시험을 보러 오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어요”하셨는데 이것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강의는 재미있게 진행되었고 매 강의마다 끝 부분에서는 퀴즈를 풀었는데 Board 시험 공부를 넌더리가 나도록 한 직후에서인지 나는 제법 많이 맞추어서 그날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Board 시험 공부를 하면서 공부를 이렇게 많이 해야 되는 줄 알았으면 아예 시작도 안했을 텐데 속으로 참 많이 후회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청중의 대부분은 의사였는데 어떤 문제는 정답자가 형편 없이 적었다.(청중들에게 키보드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답을 누르라는 시스템인데 누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고 정답자가 몇 퍼센트 인지만 알려줌) 내가 속으로 이상하다 왜 이 문제를 이렇게 많이들 틀렸을까? 의아해 하고 있는데 강사로 나온 의대 교수도 이상 했는지 “아니 이 문제를 왜 이렇게 많이 틀렸나요? 하는 대신에 “결과가 참으로 흥미있게 나왔군요.” 하는 우아한 멘트로 속내를 드러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어쩜 영어를 저렇게 예쁘게 말하지? 존경 스럽네.” 하고 혼자 웃었다.
나는 이 세미나에 다녀온 후로 의사들이 무조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주눅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 세미나는 3일내내 계속 되었는데 문제 풀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나는 선생님 닥터 발레리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서 좀이 쑤셔서 다시 출근 하여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 기쁜 소식을 샘에게 전하자. 즉시 전하자. 구호처럼 속으로 외친 후에 “에라 ,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을 그 자리에서 페이지를 했고 언제나 처럼 당장 answer가 왔다. How are you? 했더니 I am busy. 일부러 퉁명 스럽게 대답하는 선생님에게 이차저차해서 페이지를 했는데 사실은 잘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니까 크게 웃으면서 "I am so proud of you." 하셨다. 나는 또 한번 잘난 척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 있잖아요, 여기 세미나는 NP만 모인게 아니고요. 청중들 90퍼센트는 의사에요. 그냥 알고 계시라고요. 그리고요, 의사들이 많이 틀린 문제도 나는 맞췄어요. 선생님 라운딩 따라 다니다 배운 문제였거든요. 무식한 나를 Board 시험까지 합격하도록 도와주신 일등공신이시니 만큼 내가 이렇게 잘난 척을 하는 것이 그 분의 수고에대한 배려이고 보답이라는 것을 진작에 터득했기에 나는 가끔은 선생님 앞에서만 잘난 척을 하기도 한다.
세미나가 규모가 훨씬 커서인지 제약회사에서 나온 사람들도 훨씬 많았고 그들이 하는 설명은 PRESENTATION 수준이었다. 어떤 제약회사에서는 환자 교육용으로 쓸 수있는 포스터를 즉석에서 주문 받아 무료로 만들어 주고 있었는데 줄이 상당히 길었다. 나는 내 이름이 들어간 포스터가 만들어 진다는 것부터 흥분이 되고 좋아서 재료가 떨어지면 어쩌나 약간 걱정을 하면서 점심을 나눠주는 줄에 가서 join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얼른 줄을 섰다. 컴퓨터로 얼마나 멋지게 금방 만들어 주는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 하면서 제작 과정을 지켜 보았는데 이 또한 재미가 쏠쏠하였다. 내 차례가 되어서 내 영어 이름을 넣은 크리닉 이름을 넣고 여러가지 병 중에서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하여서 당뇨 치료에 관심이 많은 나는 당뇨병 환자를 위한 포스터를 받아왔다. 그 사람들은 내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거기서도 한마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좀 있다 준비가 되면 내 PRACTICE를 오픈 할 거거든요. 그때 이것 내 오피스에 붙여 놓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네 회사 광고는 저절로 되겠지요?” 하였다. 자기네 회사를 선전해 주는 것이니 그네들은 상당히 좋아하였다. 이 세미나는 다른 세미나에 비해서 등록비가 아주 저렴한 것도 아주 매력적이었는데 그 대신에 다른 세미나에서는 끝난 후 즉시 받을 수 있는 크레딧 증서를 8주 후에나 이 메일로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어쩐지 등록비가 싸더라니……. 8주를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내 크레딧 증서를 프린하여서 따로 보관하였는데 CME(continuing medical education) 라고 찍힌 증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지난 7년간의 academic journey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