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0일은 내가 컬럼비아 병원에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이날을 끝으로 나는32년 2 주 동안 다닌 컬럼비아 병원에 사직을 하였다.
혹자는 퇴직이라 하지만 NP로서 계속 근무를 할 것이니까 엄밀한 의미의 퇴직은 아니기에 마지막 날 근무도 그저 담담하였다.
그날 아침엔 퍼디엄 필리핀 간호사가 소아 중환자실에 가서 투석 치료를 하는 게 아직 익숙지가 않아서 겁이 난다 하여서 그녀와 오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후에는 컬럼비아 병원 많은 빌딩 중에서 본관 격인 Milstein Hospital 병동을 돌았다.
난 Hemodialysis 간호사로 그 큰 컬럼바아 병원 전체를 돌아다니며 일을 했어서 간호사들과 안면이 넓었기에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환자실이나 병동에 가서 투석을 할 경우 테크니션들이 기계를 준비해 주고 또 우리가 끝나면 테크니션들이 기게를 끌어다 주어서 우리는 몸만 가서 투석치료만 해 주면 되는 데 미국 전체를 통틀어 간호사 투석기계를 해주는 테크니션들이 있는 병원은 컬럼비아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미국 전체 병원을 다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세미나를 가거나 타주에서 투석실 간호사로 일하는 여러 친구들 말을 들어보고 내린 결론이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컬럼비아는 정말 간호사들에게 잘해주려 애쓰는 고마운 병원이다.
병원 당직 때 오면 테크니션이 없이 나 혼자 다 해야 하는 데 내 키만 한 기계를 끌고 다니기가 너무 버거워서 같이 당직을 서는 attending이나 fellow들에게 기계를 옮겨 달라고 부탁을 하면 모두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라면서 흔쾌하게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기계를 수도꼭지에 붙이는 것도 어쩌다 잘 안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중환자들 의사들에게 와서 좀 해 보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네들도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총알같이 달려와서 도와주었다.
이 얘기를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의사들이 이래서 참 고맙다고 별생각 없이 얘기했더니 친구 왈,
경숙아, 너는 공주같이 일하는구나…….. 의사들이 그렇게 잘 도와주니?
중환자실에 가서 기계를 수도꼭지에 붙이는 것이 안돼서 애쓰다 젊은 백인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고무링을 끼워서 쉽게 해결했는데 그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 신기해하는 내게 자기는 Plumber의 아들이라서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옆에서 봤다고 했다.
이런 에피소드도 이제는 내게 다 아련한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기억 한편을 자리하고 있다.
병동 간호사들은 그녀들은 내가 가면 무척 반기면서 그동안은 왜 안 왔느냐고 반겨 주었고, 자기네끼리 파티를 하면 꼭 와서 나도 맛있는 것 먹으라고 성화가 대단하였다.
그럴 때면 난 평생 진행 중인 그 웬수같은 다이어트 때문에 차린 음식들이 모두 살찌는 음식 들이라 한번 구경만 하고 나오곤 했는데 그러면 뚱뚱하지도 않은데 유난 떤다고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공통점, 모두 나보다 푸짐하신 분들………
병동이나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내게 고맙게도 좋은 말들도 많이 해 주었다.
난 투석실 간호사 중에서 네가 제일 좋아. …., 환자가 참 편해 보이고 투석 받는데 담요도 참 정성스럽게 덮여 있는 걸 보면 투석해 주는 간호사가 언제나 너더라.
아, Kimmie(날 병원에서 부르는 이름)가 왔구나.
그러고 널 찾아보면 네가 왔더라, 그 전부터 말해주고 싶었어, 너는 참 좋은 간호사야…………..
한 번은 같은 과 동료가 자기가 병동에 갔다가 내 얘기를 들었다 했다.
“얘, 너네 과에 그 사람 이름 뭐니? 머리 길고 얼굴도 예쁘장 한데 립스틱 진분홍으로 늘 바르고 다니더라, 그런데 그 사람 아주 나이스하더라.”
“아, 긴 머리 그리고 립스틱, 그 사람 나 누구 말하는지 알겠다, Kimmie 야.”
이 얘기를 듣던 내 동료들은 모두들 우습다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또 오후에는 나와 각별히 지내는 애나, 로렌, 렉스, 니콜라스를 만나서 따로 만나서 그동안 내게 잘해 주어서 고맙다고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들도 하나씩 주었다.
그중에서도 올해 초 우리 병원 NP가 된 해빛나는 정성스레 준비한 여러 가지 선물을 들고 그날 집에서 일하는 날인 데다 날씨도 협조를 안 함에도 불구하고 조지 워싱턴 다리를(왕복 통행료가 미국에서 제일 비싼 다리) 건너서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
해빛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열정과 정열이 가득하고 패션 감각도 뛰어나다 느꼈는데 결국 컬럼비아 NP가 되는 쾌거를 올린 자랑스러운 지인이다.
왜 내게 컬럼비아에서 NP를 하지 않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물었는데 그 이유는 나 같은 경우는 그때 RN에서 NP로 job tille을 바꾸면 연금이 40%깎이고, 의료보험 프리미엄도 몇백 달라 내야하고, 난 RN 경력이 많아서 연봉이 RN으로서는 많은 편인데, 연봉도 3만 5천이 줄어드는 데다 일은 5일을 해야 한다 했다.
우리 과에서 NP를 뽑기 시작할 때, 내게도 인터뷰 연락이 왔는데 위에 열거한 이유로 고심을 하다 인터뷰 스케줄을 내가 취소했다.
Milstein 은 10층 건물인데 4층부터 9 층까지 환자 병동, 난 수술실을 제외한 16군데에 돌릴 맛있는 한국 과자 32 박스를 준비했는데 가다가 만난 예상치 않은 반가운 얼굴들에게 하나씩 그냥 주다 보니 과자는 7층에서 끝나버렸다.
병동에 가서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했더니 왜 벌써 나가냐고 대부분들 놀라면서도 퇴직 후에 잘 지내라 축하해 주었다.
지난 9월에는 30여 년 같이 근무한 Nephrologist들에게 거금을 들여서 한식으로 점심을 크게 냈는데 코로나로 집에서 일하는 의사도 많고 또 분원에 가 있는 의사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게 특별히 더 잘 해주어서 꼭 왔으면 하는 의사들은 늦게라도 헐레벌떡 나타나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나간다고 발표를 했더니 모두들 이렇게 펄펄 날아다니는 사람이 왜 벌써 나가느냐고 나가지 말라고들 하여서 내심 많이 고마웠다.
의사들 중 몇몇은 왜 나가는지, 정말 나가는 이유가 뭐냐면서 심각한 얼굴로 내게 따로 묻기도 하였다.
“우리 과는 오고 싶어 하는 간호사가 많잖아요. 자리 좀 내 주려고요, 그리고 NP 일이 재미있네요.”
코로나로 사람이 모이는 것을 싫어하니까 간호사는 다른 날 점심을 역시 한식으로 크게 대접을 하였고 우리 과 옆이 입퇴원 수속하는 곳인데 거기 사람들도 내게 아주 친절하게 잘 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곳과 함께 환자들 데리고 다니는 transportation dept에도 함께 점심을 내었더니 모두들 고맙다고 좋아하였다.
그전에 퇴직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은 경우를 빼고는 병원에서 은퇴 파티를 크게 해 주었는데 난 코로나 때문에 할까 말까 망설이다 “이 코로나 와중에 무슨 파티냐고, 그냥 나오라, 엄마 파티 갔다가 코로나 걸렸다 하면 어쩌려고 하느냐”라는 딸애의 한마디 안 하기로 결정했다.
파티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우리 과 의사들이 모두들 성품이 곱고 겸손해서, 다른 병동 간호사들도 내게 우리 과 의사들 칭찬을 많이 했기에 그런 말도 공식 석상에서 한번 해주고 또 내게 특별히 잘 해준 의사들과 얽힌 에피소드들도 나누면서 그야말로 고맙다고 해 주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지만 뉘라서 코로나 사태를 짐작이나 했을까?
나중에 책으로 쓰던지 아니면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 자신에게 일렀다.
너스케입 독자 여러분,
여러분께서 기다리시는 유튜브는 좀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컬럼비아 직원은 이런 걸 하려면 병원 허락을 받아야 해서 지금까지 기다렸고요.
이제 퇴직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배워 보려고 해요.
영상을 연습을 해서 몇 개 찍었는데 편집이 시간이 좀 걸리네요.
많은 분들이 어서 유튜브를 시작하라고, 구독을 하겠다 격려를 해 주신 것을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뉴욕에서 김경숙 드림

저는 큰 병원 컬럼비아에 와서 그 큰 병원보다 더 큰 사랑을 여러분 모두에게 지난 30년간 받았습니다.
컬럼비아 고마워요.뜻깊고 즐거운 연말연시가 되길 빕니다. - 뉴욕에서 김경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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