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뉴욕에서 내가 겪은 일
  • 조회수: 1444 | 2020.06.10

독자 여러분께 오랜만에 글을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코로나가 미국에 상륙한 뒤 뉴욕이 호된 직격탄을 맞은 곳이라 병원에서 너무 바빴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실 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확진자는 나날이 줄어가는 데 사람들이 병원에 왔다가 코로나 옮을까 봐 겁을 먹고 병원에도 안 와서 많이 한가해지고 조용해졌습니다.

 

모두가 겪은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겪었는 지 한국의 간호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올해, 컬럼비아 병원을 그만두기로 2년 전에 결심을 하였기에 3월 초에 평생직장으로 다니던 컬럼비아 병원에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일은 4월 초에 끝나고 나머지는 안 쓰고 밀린 휴가 6 주를 다 쓰고 나가겠다고 모든 서류를 일찌감치  제출을 하고 마지막 스텝인 병원 컴퓨터에 들어가서 사직한다고 해야 하는 절차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중에서도 뉴욕은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미국의 우한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이미 동료들에게 나는 컬럼비아를 사직한다고 얘기도 했고 내게 특별히 각별하게 잘 대해준 의사 간호사들에게 땡큐 카드와 함께 준비한 작은 선물도 반쯤 돌린 후였다.

 

컴퓨터 절차 마감일이 다 되어가는 데 병원 컴퓨터에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고 3월 중순부터는 이미 넘쳐 나기 시작한 코로나 때문에 모두들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같은 평민에게 뉴욕주 주지사가 일터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하는 이메일이 왔는데 의료진 면허가 주정부에 등록된 사람에게는 주지사 오피스에서 일괄적으로 다 보냈다고 했다.

 

TV에 나오는 주지사는 며칠 사이에 10년은 늙어 보여서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저 사람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 잠도 잘 안 잔다는 데 저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

 

주지사는 브리핑 때도 의료진들에게 호소를 많이 하였는데 주지사에게서 3 번째 이메일이 왔을 때 난 지금은 사직할 수도 없고 사직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사직한다고 누가 체포하러 오지 않겠지만 32년이나 다닌 직장에서 간호사가 제일 필요로 할 때 나가는 것은 아무리 그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해도 내 인생 가치관으로는 용납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동안 신청한 휴가도 모두 보류한다는 소리가 들려서 그 일로 매니저에게 갔더니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병원에서 나가게 하느냐고 묻기에 당연히 못 나가게 하지요 하고 대답하고 6주 휴가 중에서 2주는 쓰겠다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사태가 터지고 그만둔 간호사들도 많으니까 못 나가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갔다 해도 그 자유시간을 도저히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남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시 전체에 환자가 넘쳐 나니까 중환자실이 턱없이 부족해져서 우리 병원도 회복실, 수술실을 중환자실로 개조를 했고 새로 지은 중환자실은 넓어서 투석 치료해 줄 때 좋았는데 그 공간을 비집고 침대를 한 방에 두 개를 넣었다.

 

그러고도 모자라니까 일반 병실 한 켠을 중환자실로 개조를 해서 ventilator 와 카메라를 설치를 해서 밖에서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계속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ventilator 가 모자란다더니 박물관에 있는 ventilator를 가져왔나 싶을 정도의 구형 ventilator 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제일 고생한다 싶었는지 보너스도 지급하고 파킹료를 면제해 주겠다고 했다.

 

보너스는 뉴욕주 간호사 노조에서 내놓으라고 한 것 같은 데 동의를 한 병원만 지급한다 했다.

 

보너스가 나오긴 나왔는데 주급이랑 한 체크에 다 넣어버려서 세금으로 다 떼 가서 받은 것 같지도 않게 나왔다.

 

해서 간호사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는데 높으신 분 들 귀에 이게 들어갔는지 4월에도 주고 5월에 또 한 번 주었다.

 

컬럼비아는 처음부터 PPE를 넉넉하게 주어서 우리는 몹시 고마워하였고 병원 두 건물을 잇는 다리의 커다란 창문에 “우리들의 영웅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당신 “ 하고 대문짝만 하게 새겨놓았는데 어떤 이는 그걸 보고 울었다 했다.

 

병원 입구에도 고맙다고 페인트로 크게 써놓고 4월 초부터 전 직원에게 아침, 점심, 저녁에 다 간식까지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일일이 개별 포장을 해서 나눠주었다.

 

7월 말까지 준다고 하는 데 얼마나 고마운지. 미국에서는 우리 병원같이 대형 병원은 직원들 점심을 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들 밥 주는 것도 힘든데 몇 천 명 되는 그 많은 직원을 어떻게 밥을 주겠는가?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출근하면서 밥을 안 싸와도 되니까 그 편안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음식 사느라고 줄을 서는 것을 개인적으로 몹시 싫어하는 나는 늘 밥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아예 안 가져오던지 가져와도 조금만 가져오면 되니까 그야말로 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한 번은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끝내고 내려오다 엄청나게 큰 스낵 카트를 밀고 오는 직원과 마주쳤다.

뭐예요? 점심이에요? 하고 배가 고파서 기운 없이 묻는 내게 “아니요, 이건 당신들을 위한 스낵이에요. “ 하면서 커다란 박스를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열었다.

 

박스는 얼마나 큰지 나 하나 때문에 열라고 하기에 미안할 정도였다.

 

그 안에는 내가 평생 진행 중인 다이어트 때문에 평소에는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 맛난 간식들이 수북하였다.

 

그녀는 내게 상냥한 목소리로 “먹고 싶은 것 다 집어요.” 하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확 쏟아졌다.

 

세상에 병원에서 우리가 얼마나 불쌍하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에.

 

스낵 카트는 우리 과에는 안 왔지만 중환자실에는 어김없이 맛난 먹거리들을 수북하게 쏟아놓고 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는 데 나는 그때마다 쫓아가서 두 개 만 제일 먹고 싶은 것으로 집어왔다.

 

중환자실에 가면 외부에서 배달되온 음식들도 넘쳐났는데 간호사들 엄마나 사촌, 친구들이 수고한다고 같이 들 먹으라고 보내 준 음식이라 했다.

 

한 번은 CTICU에서 간호조무사가 음식 배달 지금 왔다고 와서 먹으라고 재촉을 하였다.

 

뭐가 왔나 궁금하기도 해서 못 이기는 체 따라갔더니 맛있게 생긴 여러 종류의 따뜻한 샌드위치였다.

 

하나 집고 싶었지만 중환자실 의사, 간호사들 먹으라 보낸 것임을 알기에 일단 눈도장만 찍고 나중에 모두들 먹은 후에 남은 것 중에서 작은 것으로 하나 집었는데 참으로 맛이 있었다.

 

병원 이메일을 체크하던 중 내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유언장 작성 서비스를 우리들 상대로 해 준다 했다.

 

유산 상속 전문 변호사가 도와주는데 유언장 작성하는데 800달러가 든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병원에서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었다.

 

어려운데 수고한다고 뭘 좀 더 해 줄 게 없을까 생각하다 이런데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생각하니 정말 고마운 병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전에도 병원이 코로나 사태 나고 우리 간호사들한테 너무 쩔쩔매고 미안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는 데, 병원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하는 생각도 했었다.

 

병원은 코로나 환자가 모두 침대를 차지하여서 코로나 환자가 아닌 환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나와 같이 일하는 의사들과 함께 궁금해하기도 하였다.

 

환자 가족들을 병원에 면회 올 수가 없어서 병원은 간호사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다리까지 가린 PPE 가 내는 소리만 들리고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평소에 환자 가족들이 병원에 와서 의사, 간호사들에게 뭐라고들 하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그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는 일하는 데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뭐야, 방송 실수인가 하고 있는 데 음악이 안 그치 기에 옆의 간호사에게 “뭐예요 저거 시끄럽게“라고 짜증스럽게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건 좋은 소리에요, 코비드 환자가 extubation 을 했거나 다 나아서 퇴원할 때 병원에서 틀어주는 음악이에요.” 

 

아, 그러니까 우리들 힘내라고 격려하라고 틀어 주는 음악이구나.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참신하다 생각하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시신을 보관할 컨테이너들을 병원마다 사들였다고 했는데 우리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원 뒷마당의 냉동 컨테이너를 확인하고 오니 오히려 담담해졌다.

 

간호사들이 코로나 사태 초기에 하도들 무서워하기에 걸리고 안 걸리고 하나님 뜻이고 걸렸어도 무증상으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80 퍼센트라니까 너무 무서워들 하지 말고 기도 많이 하고 우리 다 같이 이 힘든 시기 이겨내자고, 추억처럼 얘기할 때가 올 것이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내 뒤에서 기도를 해 주시는 목사님만 해도 여러분이 계셨고 또 친구들도 기도 대장들이 몇이 있어서인지 그들의 기도 덕분에 그래도 힘든 고비는 탈 없이 넘어갔다.

 

우리 애들은 집에서 일도 하고 수업도 온라인으로 계속 들었는데 문을 닫으라 하여서 일을 못하는 친구들은 우리는 힘들게 일하는 데 자기네는 뒤에서 놀면서 실업수당이나 타고 있다고 몹시 미안해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많이 진정이 되었지만 코로나가 한창 맹위를 떨칠 때 우리 병원에 본원 말고 분원 같은 작은 병원의 응급실장 닥터가 자살을 하여서 나는 그 소식에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그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코비드19 에 감염되어서 격리를 하고 왔다가 다시 집으로 가서 49살, 응급의학 전문의인 그녀는 자해를 하여서 세상과 작별을 했다고 했다.

 

의사 49이면 한창 일할 때인데 이런 인재가 허망하게 자살로 가 버렸으니 국가적인 손실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힘들면 그냥 나와 버리지 왜 자살을 해요“ 하고 나는 그녀의 자살 소식에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의사 로서 코비드19 환자들에게 해 줄 것이 없다고 무력감을 의사인 그녀의 아버지에게 자주 호소했다고 하는 데 우울증도 겹친 것 같았다.

 

Essential worker라고 의사, 간호사들은 당연히 포함되는 여러 직업군들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여기저기 거리마다 붙어있고 의료진 들은 무료로 커피나 도넛 햄버거 등을 주는 서비스도 많아졌고 물건 살 때도 의료진은 더 할인해 준다고 했다.

 

뉴욕시에서는 의료진들에게 저녁 7시마다 박수를 쳐주는 데 자기 집에서 나와서 무조건 5분간 박수를 치면 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다고 한다.

 

나는 롱 아일랜드 살아서 못 들었는데 한 번은 뉴욕시에 사는 친구한테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5분만 전화를 끊자고 했다.

 

그러라고 5 분 후에 다시 통화를 했는데 7시에 우리 같은 의료진에게 박수를 쳐 줘야 해서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일부러 소리를 더 크게 내려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던지 냄비를 숟가락으로 크게 두드리기도 해서 자기도 가끔은 냄비도 5분 동안 두들긴 다기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듣진 못했어도 우리가 목숨 걸고 출근한다는 것을 알기에 냄비까지 동원되는 것이지 생각하니 누가 생각해 냈는지 정말 고마운 일 아닌가.

 

모두가 알다시피 코비드 19 사태는 진정 국면에 들어서긴 했어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루속히 코비드 걱정에서 자유 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간호사 선생님 여러분, 앞으로 좀 조용해지면 미국 간호사 이야기, 의학 영어 배우기 등등 30여년간 RN으로 nurse practitioner로 미국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일들을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려고 해요.

 

준비도 해야 하고 해서 어느 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에서 하도 해 보라고 성화들을 대어서 결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해 보려고요. 유튜브가 개설되면 알려 드릴게요.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과 격려를 미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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