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시간이 나네요.
방학하기 전 처럼 매달 올리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되는대로 두, 세달에 한 번씩이라도 글을 올리려고 생각중이에요.
일기를 아껴주시고 애독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9살의 그녀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혀의 반을 양 입술 사이로 내밀고 계속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옆에 있는 엄마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더니 내게도 안아 달라고 팔을 벌리며 웃었다. 그러라고 대답을 하며 안아 주었더니 우!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청진을 끝내고 약도 제대로 먹고 있나 확인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엄마를 만지고 또 만지고 있었다. 내 진찰이 끝나니 엄마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내 인생이 없이 이렇게 살아요.”
환자는 29살이었는데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지고 있기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 따님이 글은 읽나요?
“못 읽어요. 학교 다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게 했어요.”
- 그랬군요, 그래도 학교를 보내셔야 할 텐데요. 글은 읽어야지요.
“다시 보내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 세라(가명)야, 책을 읽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책 읽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 학교 다니는 게 힘들면 집에 선생님을 오게 할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따님을 다시 학교에 보내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꼭 연락을 주세요. 소셜 워커가 도와줄 수 있어요.”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나는 그 날 밤 글조차 읽지 못하고 서너 살 아이들 장난감만 가지고 놀던 이 환자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밖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서 거의 집에만 있는 그녀는 고도의 비만도 있었고, 엄마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엄마가 돌아가시면 그 후에는 어떻게 살까? 엄마만 주물러 터트리며 사는 세라가 엄마가 옆에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면서 소일을 할까? 글을 읽어야 책도 읽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읽을 수 있어야 집 밖으로 나와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 사람을 세상과 소통하게 해 주리라.'
왜 그전에 이 환자를 진료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쏘셜 워커와 연결해 주지 않았을까? 미국은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들까지 그 비싼 병원비를 병원비 지급 능력과 상관없이 일단 사람부터 살려놓고 별별 필요한 혜택을 다 제공하는 나라가 미국 아닌가? 이 사람은 미국 시민인데 당연히 특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내가 이 환자를 도와주자, 내가 할 수 있지 않은가? 이 환자 생각에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나 버렸고, 나는 다시 일어나서 회사에서 환자 노트를 쓰라고 준 내 컴퓨터를 다시 켰다.
엄마가 다시 연락하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데 결론이 나자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환자를 refer 할 때는 이유를 소상히 기록해야 하기에 나는 자세히 썼다.
- 환자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특수 교육이 꼭 필요한데 교육이 중단되었습니다.
환자가 특수교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에 소셜 워커와 꼭 연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일단 소셜 워커와 연결이 되면 엄마가 빨리 결정을 할지도 모르고, 소셜 워커가 도와준다고 해도 그래도 싫다면 그래도 내 할 일은 다 한 셈이니까 나로서는 나중에라도 이 일로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데 대한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나는 이 환자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쏘셜 워커와 연락이 되었냐고 맨 먼저 물어보는 내게 그녀는 왜 내가 소셜 워커를 만난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냐는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소셜 워커와 얘기가 잘 되어서 곧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을 해보고 적응을 잘하면 시간을 점차 늘려가기로 했다고 했다. 그곳에는 이 환자를 위한 여러 가지 시설들도 좋고, 또 필요한 치료도 다 받을 수 있다면서 환자의 엄마는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처음 만났을 때 처럼 세라는 나를 자꾸 껴안으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세라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지난번과 똑같은 소리를 했다.
“세라야, 책을 읽는 것은 아주 재미있어. 학교가면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이 너에게 책 읽기를 가르쳐 주실 거야. 내 말 믿어도 된다. 책 읽기는 아주 재미있어.”
그리고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또 한 번 안아 주었다. 그녀가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나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는 속으로 신기하였다. 세라가 자기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밀어 버린다고 엄마가 알려주면서 세라가 나를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세라를 또다시 만났을 때는 장난감 대신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상상을 하면서 나는 그 날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를 도와 줄 때마다 늘 내게 해 주는 말, '그래 NP가 되기를 참 잘했다… 이 환자를 이렇게 도와주었으니…'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해주던 그 날은 도서실에서의 한순간이 오버 랩 되어서 나는 혼자 웃었다. 그전에도 언급했지만, 공부할 게 하도 많아서 이 공부가 언제 끝나기나 하려나 하고 답답하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어서 가끔 지친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 날도 공부를 하다가 피곤해서 좀 쉬었다 해야지 하는데 갑자기 어린아이들이 신나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창을 타고 들려왔다. 조무래기들이 도서실에 마실이라도 왔나 내려다보니 보기만 해도 귀여운 유치원생들이 도서실 놀이터에 마련된 미끄럼틀을 타면서 신나서 떠드는 소리였다.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닌데도 그 작은 다리들을 쉴새 없이 움직이며 부지런히들 걷는 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에고, 너희는 좋겠다. 시험 안 봐도 되고… 나는 언제까지 이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얘들아… 언제나 너희들처럼 마음 놓고 놀아 볼까?'
세상에 아무리 공부가 힘들기로 유치원생과 비교를 하다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 모든 일이 이제 다 추억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NP 시험에 붙으려고 도서 실에 쉬는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공부라면 진저리가 나도록 공부에 또 공부만 하던 그 시절이 가끔 얼마나 절절하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English for healthcare professionals 에는 의학영어 회화뿐 아니라 ......카더라 통신이 아닌 미국에서 간호사 로 근무하는 저자가 쓴 미국 간호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책 구입을 원하면 click here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